“자네 계획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야”
원로당원께서 해주신 전략 컨설팅
“제 장인어른이 오랜 민주당 당원이신데 소개해드리면 혹시 도움이 되려나요?”
제가 회사를 마지막으로 출근한 날, 퇴근 전 사무실을 돌며 작별 인사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한 동료가 대뜸 장인어른을 소개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갑작스럽고도 반가웠습니다. 중년 세대 민주당원을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그런데 아버지도 아니고 장인어른을요...?”
약속 장소는 남도 음식을 파는 식당이었습니다. 동료의 장인이신 박 선생님께서는 원로당원 한 분도 함께 모시고 오셨습니다. 70대 원로당원 김 선생님은 민주당에서 지역위원장도 역임하실 정도로 명망 있고 당 상황을 잘 아시는 분이라고 소개해주셨습니다. 평생 건물 짓는 일을 하셨다는 김 선생님은 70대 초반의 연배셨고 호탕한 분이었습니다. 두 분께서는 짤막한 상의 후 보리굴비 정식을 주문하셨고, 즉시 본론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김 선생님: 내년 성남시장 선거에 나가고 싶다고?
대호: 예. 조금 황당하게 들리시겠지만, 그렇습니다.
김 선생님: 음… 안 됐지만, 자네는 시장 선거에 나갈 수 없어. 이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야.
대호: 선생님, 제가 당규(당의 규칙)를 찾아보니 누구나 경선에 참여할 수 있다고 적혀있었습니다. 앞으로 기존 당원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제 또래 중에서 공감대가 있는 분들을 신규 당원으로도 가입시키면...
김 선생님: 모르는 소리.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왜 이렇게 이야기 하는지 내가 설명 해줌세.
김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저같이 어리고, 배후에 유력 정치인도 없는 사람은 선거 후보로 지지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동네에서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당원들은 무관심할 것이고, 신규 당원을 가입시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랍니다. 또 더불어민주당 성남시장 후보자를 뽑는 경선에 지원하더라도 결국 ‘컷오프’ 될(잘릴) 거라는 게 김 선생님 말씀입니다.
김 선생님: 자네를 밀어주는 유력 정치인이 중앙에 있으면 최소한 경선에라도 들어가는 거고, 없으면 거의 컷오프된다고 보면 돼. 잘리는 이유야 붙이기 나름인 거고.
김 선생님이 제시해주신 대안은 대선 캠프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유력한 대선후보의 캠프에 들어가서 크게 기여하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청와대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청와대에서 한 2년 정도 일한 후에 선거를 준비한다면, 그건 해볼 만하고 통상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저는 “2030 세대가 공감할 만한 일을 하면서 신뢰를 쌓고, 그들이 당원으로 가입하도록 유도해 당을 확장하고 변화시키고 싶다”고 계획을 말씀드렸습니다. 두 분은, 결국 중앙에서 밀어줄 사람이 없으면 꽝이니 헛물켜지 말고 빨리 유력한 정치인의 대선 캠프에 일자리를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식사의 끝 무렵에는 잘해보라는 격려도 해주셨습니다. “멀쩡한 회사 때려치우고 시장 선거에 나간다니 뭐 이런 황당한 놈이 다 있나 싶었는데, 진짜 해볼 생각이 있기는 있구만. 열심히 해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습니다. 두 분께는 제가 돈키호테 같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황당하긴 하지만 젊은 친구가 뭘 해보겠다고 하는데 대놓고 무시해서는 안 되지’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 감사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분의 말씀이 사실이라고 해도, 저는 제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선생님께서 짜 주신 계획을 따라 갈 수도 있겠지만, 친구들과 함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사회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정치만큼 흥미진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음 편지에서는 친구들에게 선거에 함께 도전할 동료가 되어달라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해 좌절한 이야기를 써보겠습니다.
이번 주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시고 며칠 뒤에 만나요!
이대호 드림.
P.S. 참고로, 보리굴비 식사뿐만 아니라 커피도 두 분이 사주셨답니다. 감사한 마음에 제가 계산하려고 했더니 콧방귀를 뀌시며 “자네는 밥 값 낼 군번이 아니야”라고 하셨습니다.
보리굴비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그루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