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당근마켓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당근마켓의 ‘동네생활’을 아세요?

당근마켓에 ‘동네생활’이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끼리 보는 자유게시판 같은 것입니다. 동네 식당, 병원, 학원 정보를 묻기도 하고 분실물이나 반려동물을 찾아주기도 합니다. 같이 운동할 사람을 모집하기도 합니다. 이걸 보다 ‘어, 그럼 나도 성남시민 인터뷰해주실 분을 모집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판교의 백현동으로 지역을 설정해 글을 올렸습니다.

예상 못 했던 방향으로 전개됐습니다. 거의 관심을 받지 못할 줄 알았는데 100개 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보통 댓글이 많아야 서너 개인 게시판인데 말이죠. ‘인터뷰를 해달라’는 저의 제안에는 다들 무반응이었지만, 자신의 의견을 댓글로 활발하게 달아주셨다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댓글로 의견을 알려주세요’라고 할 걸 그랬습니다.

#담배 #버스 #불법주차 #공원

한국일님과 함께 정리한 자료

“길에서 담배 냄새 맡는 거 넘 스트레스야!”가 가장 많은 분의 의견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구역에서 문제가 생기는지 콕 집어 말씀들을 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약 열 군데의 문제 지점을 알게 됐습니다. 그야말로 집단지성입니다. 혼자 돌아다니면서 파악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귀한 공약 기획 자료를 얻었습니다.

그다음은 “판교 버스 노선, 이게 최선이야?”입니다. 비슷한 이름의 노선이 여러 개(예: 602, 602-1, 602-1A 등)라 헷갈리고, 판교에서 서현 등으로 이동하기가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저도 판교에 살면서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방식에도 합리적 이유가 있겠지만, 교통과 관련된 다양한 기술이 발달하고 있으니 더 나은 대안을 충분히 기획해볼 수 있습니다.

불법주차 단속을 더 ‘빡세게’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이것 역시 문제 지역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신 분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분당을 관통하는 하천이자 공원인 탄천 환경을 더 섬세하게 관리하면 좋겠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철쭉’보다 ‘라일락’을 많이 심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인상적이었어요. 탄천에 심긴 ‘꽃’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어떤 분들한테는 ‘어떤 꽃이냐’가 중요한 문제더라고요.

그 외 기타 의견으로는 대학 문턱이 너무 높다, 부동산 가격이 너무 비싸다, 불법 성매매 업소 단속을 했으면 좋겠다, 탄천에 흐르는 물이 점점 줄어드는데 대책을 세우자 등이 있었습니다. 마흔 분 정도가 상세하게 의견을 남겨주셨어요. 솔직히 상상 이상의 결과였습니다. 이 글을 보실지 모르겠지만 의견 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세계의 평화? (no way) 거대한 질서? (no way)

정치인 하비 밀크는 샌프란시스코 시의원 선거에 세 번 나가 모조리 떨어졌습니다. 그는 성소수자 권리 보장을 정치적 목표로 삼는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소수자 공동체 내에서는 인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유권자는 성소수자 운동에만 관심을 두는 게이 정치인 하비 밀크를 시의원으로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당선됩니다. 하비 밀크가 네 번째 도전에서 당선될 수 있었던 비결은 ‘개똥’입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에는 도시 곳곳에 버려진 개똥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하비 밀크는 자신 역시 샌프란시스코 시민으로서 ‘개똥’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고, 당선되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이후 유권자들은 그에게 마음을 엽니다.


저는 기후변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매우 중요한 정치적 문제이자 긴급한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보신 것처럼 유권자가 평소 관심 갖는 주제는 담배나 버스입니다. 중요한 문제라고 해서 사람들이 자주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거창한 이야기를 할 기회를 얻으려면 ‘개똥’을 찾아야 합니다. 내가 당신의 마음 속 ‘개똥’을 알고 있다고, 정치인으로서 ‘그저 널 지킬 거’라고 이야기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방탄소년단도 노래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거든요.

‘세계의 평화? (no way) 거대한 질서? (no way) 그저 널 지킬 거야 난 (boy with love)’- 작은 것들을 위한 시 (BTS)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