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구경 좀 시켜주세요

성남에는 50개의 ‘동’이 있습니다. 어느 날 동 목록을 살펴보는데 안 가본 곳들이 많더라고요. 20년을 이 도시에서 살았는데도 말입니다. 이 도시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선거에 출마했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어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죠. 이제라도 하나씩 알아가기 위해 ‘동네산책’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다녔는데요. 지난번엔 친구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계기는 ‘아파트 뒷산 개울이 얼면 미끄럼틀 삼아 썰매를 타곤 했다’는 ‘엄👩’의 이야기였습니다. ‘엄👩’은 저의 ‘과거 직장 동료🧑’의 ‘배우자👧’의 ‘대학 동창’으로 약 30년 차 성남시민입니다. 성남시민 인터뷰를 위해 만났는데, 동네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게 해주시더라고요. 특히 ‘아파트 뒷산 개울’ 이야기가 생생했습니다.

“한 번 구경 시켜주시면 안 되나요?”

그렇게 모험이 시작됐습니다.

저는 노는 계획 하나는 잘 짜는 편입니다. 해질녘에 상대원동에 있는 유명한 갈빗집에서 만나 갈비를 먹고, 커피 한 잔씩 들고 동네 구경을 하다가 뒷산 개울까지 보는 코스를 짰습니다. 계획을 신나서 여기저기 했더니 멤버가 늘어났습니다. 방역수칙을 준수하기 위해 4명으로 끊어 ‘동네산책’을 떠났습니다. 지금처럼 더워지기 전이었고, 금요일 저녁이었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아이유의 밤 편지가 어울리는 밤이었습니다.

상대원동 동네산책

아파트 뒷산 개울 찾기

‘엄’의 안내에 따라 아파트 단지, 동네 상가, 성남 하이테크밸리, 버스 종점 순으로 산책했습니다. 아쉽게도 아파트 뒷산 개울에는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막아두었기 때문입니다. 동네 상권은 점점 나이가 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엄’이 어렸을 때는 아이들이 많아 학원, 슈퍼가 많고 발랄했는데 지금은 장사를 멈춘 가게가 드문드문 보였습니다.

성남 하이테크밸리 야경

성남 하이테크밸리에는 새로 지은 아파트형 공장과 대형 오피스 빌딩이 많았습니다. 제조업 회사가 많아 아파트형 공장이 대세인 것 같았습니다. 야간 근무자들이 출근하는 시간대인지 빌딩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교대로 일하며 24시간 돌아가는 공장들이 많다고 합니다. 야간에 일하는 사람들만의 고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원1동 동네 상가

‘엄’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습니다. 사장님이 담배 피우시고 손을 잘 안 씻으시지만 장사는 아주 잘 되는 치킨집 이야기, 큰 아파트형 공장이 들어오면서 작은 분식집이 하루아침에 큰 백반집으로 진화한 이야기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걸으니 납작했던 풍경이 입체로 부풀어 동네 사람들의 희노애락이 담긴 공간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봄밤 #수박쥬스 #산책 #야경 #상대원

정치가 이렇게나 재미있습니다. 혹시 이렇게 동네 구경시켜주실 분이 계신다면 메일을 보내주시겠어요? 당장은 거리두기 4단계로 어렵지만, 적당한 시기에 원정대를 꾸려서 함께 ‘동네산책’하고 싶습니다!

재미는 보장합니다. 근거자료로 함께 ‘동네산책’ 다녀온 친구들의 후기를 아래에 첨부합니다. 좋은 동네 친구도 사귈 수 있답니다.

당분간은 더위, 코로나 조심하시고 날씨 좋은 날 같이 놀아요!

이대호 드림.


부록: 동네산책 후기

‘엄👩’: 오랜만에 집에 오니 언덕이 이렇게 높았나… 저를 포함 다들 숨이 찬 모습을 보니 살짝 웃기기도 하고. 운동을 어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 시를 가든 비슷할 것 같은데 성남은 동네마다 주는 분위기가 정말 다른 것 같아요. 그날 동네를 둘러보니 평평한 분당도 좋고 남한산성으로 바로 갈 수 있는 저희집도 꽤 좋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사를 간다면 평지로… 그리고 SK에서 본 야경이 멋있던데 아!! 저희 아파트 15층에서 본 야경이 더 멋집니다. 즐거운 시간이었고 나의 동네 소개한다는게 생각보다 더 재밌네요~

‘노👦’: 진.짜. 좋았습니다. 성남시민으로 오래 살기만 했고 청년배당만 받을줄 알았지 분당외 거주환경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없네요. '새로운 주변 동네 걷기'는 공동체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첫 걸음인 것 같습니다. 다음 걷기가 기대되어요. 언젠가 줄줄이 동네 걷기가 트렌드가 되는 그날까지..!

‘유진👱‍♀️’: 가장 인상깊었던 건 역시 ‘엄’이 놀던 약수터 공간이었는데, 막혀있어서 아쉬웠습니다. 왜 산책로조성이 안되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치안문제인지… 성남시 근로자종합복지관은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음에도, 차량진입로외엔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이용하기 어려운 아주 높은 계단만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엘리베이터 설치가 필요한 제 2순위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