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이 정말 ‘범인’일까?
발단: 다들 ‘부동산 가격이 문제’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판교에서 일하는 직장인을 열 분쯤 인터뷰했습니다. 말씀하신 문제는 다양합니다. 주차난, 마을버스 노선이 복잡해 헷갈리는 문제, 교통체증, 비싼 밥값 등등. 그런데 더 얘기하면 ‘결국은 부동산 가격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회사 근처에 살면 다 해결되는데, 집값이 너무 비싸니 그게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전개: 범인은 정말 ‘부동산 가격’일까?
판교의 ‘K사🚀’라는 회사에 다니는 ‘김🤠’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회사로부터 80분 걸리는 곳에 사는 ‘김🤠’은 회사에서 30분 거리의 ‘H아파트🏢’에 살고 싶습니다. ‘H아파트🏢’ 가격은 120만 원이고 ‘김🤠’이 가진 돈은 100만 원입니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이 하락해 ‘H아파트🏢’ 가격이 100만 원이 됐습니다. ‘김🤠’은 재빠르게 ‘H아파트🏢’를 샀고, 매주 500분(80분-30분 * 2 * 5)의 출퇴근 시간을 줄여 더 필요한 곳에 쓰게 됐습니다.
‘김🤠’의 입장에서는 잘된 일입니다. 그런데 사회 전체로 보면 나아진 것이 없을지 모릅니다. 원래 'H아파트🏢'에 살던 '누군가😫'가 멀리 이사 가서 그의 출퇴근 시간이 늘어났을지도 모르니까요. ‘부동산 가격’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직주근접’한 집의 총량입니다. 만약 해리포터가 찾아와 마법을 사용해 10층이었던 'H아파트🏢'를 20층으로 바꾸어준다면 더 많은 ‘K사🚀’ 직원들이 출퇴근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될 테니까요.
부동산 문제의 진범은 ‘가격’이 아니라 ‘총량’일 수도 있습니다.
갈등: 직주근접이 가능한 집의 총량을 어떻게 늘리지?
판교 기준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2022년에 제2테크노밸리, 2024년에 제3테크노밸리가 완공됩니다. 더 많은 기업이 판교로 들어오게 됩니다. 기업이 들어오면 직원들이 함께 들어옵니다. 이들이 역시 집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직주근접’한 집을 원할 것입니다.
‘직주근접’한 집의 총량을 늘리는 단순한 방법은 ‘회사 근처에 집을 많이 짓는 것’입니다. 판교에서 일하는 회사원 수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판교에 집을 만드는 거죠. 문제는 그게 어렵다는 점입니다. 한 명 몫의 사무실을 만드는 일이 한 명 몫의 집을 만드는 일보다 쉽기 때문입니다. 지금보다 더 크고 발전해있을 미래 판교에서는 ‘직주근접’을 위해 더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말: 재택근무를 늘리면 ‘직주근접’한 집의 총량이 늘어난다
인터뷰를 해주셨던 판교 직장인 ‘박’은 ‘경기도 안성시’까지 집을 알아봤다고 합니다. 안성시와 판교는 6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대중교통으로는 편도 2시간, 자가용으로 (안 밀리면) 1시간 10분 정도 걸립니다. 적게 잡아도 2시간 30분을 매일 통근에 써야 합니다. 직주근접과 거리가 멀죠.
만약 ‘주4일출근제’를 도입하면 어떨까요? ‘반드시 하루는 재택근무 할 수 있고, 출근은 4일만 해도 된다’고 보장하는 것입니다. 안성-판교 기준 출퇴근 시간이 하루 평균 2시간 30분에서 2시간으로 줄어듭니다. 만약 ‘주3일출근’이라면 2시간 30분에서 1시간 30분으로 줄어듭니다. 편도 45분꼴이니 이 정도면 ‘직주근접’에 가깝네요. 즉, 재택근무 활성화로 출퇴근 횟수를 줄이면 ‘직주근접’한 집의 총량이 늘어납니다.
*주4일출근제라는 표현은 조선일보 최훈민 기자님의 페이스북 글에서 차용했습니다.
위기: 주4일출근제 어떻게 도입하지?
제가 생각하는 주4일출근제는 개별 기업 단위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판교에 있는 대부분의 기업이 다 동참하는 방식입니다. IT 업계는 이직이 잦고, 집은 한 번 정하면 바꾸기 어렵습니다. 이직해도 주4일 출퇴근이 보장돼야 실효성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판교에 있는 회사들을 모조리 ‘주4일출근 기업’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저도 뾰족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네요. 강제할 방법은 당연히 없고요.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으시거나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분은 답장 부탁드립니다. 큰 도움이 됩니다!
17살 때부터 통학, 통근 매일 왕복 2시간 이상 하면서 수많은 시간을 길에서 보내 출퇴근 시간 줄이는 것이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기도민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