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이 날 사랑해줘, 설령 네가 불행해지더라도
독후감 (1) 클라라와 태양
이번 주에 강원도 양양으로 이틀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이번 휴가의 목적은 ‘얌전히 쉬기’였습니다. 막국수 먹으러 한 번, 감자옹심이 먹으러 한 번, 사찰 구경 한 번, 시장 구경 한 번 외에는 계속 숙소에 있었습니다. 숙소 앞 잔디밭에서 강아지와 공놀이 하고, 낮잠 자고, 영화 보고, 책 읽으며 아기자기하고도 꽤 즐겁게 지냈습니다.
가져간 책이 재미있어서 즐거움이 컸습니다. 책의 제목은 <클라라와 태양>입니다.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쓴 400쪽짜리 장편 소설입니다. 주인공인 클라라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인간형 로봇입니다. 오늘은 이 책을 소개하고 싶네요.
이야기는 로봇 클라라가 한 아이의 집으로 팔려 가면서 시작됩니다.
줄거리
<클라라와 태양>의 배경은 적당히 먼 미래의 미국입니다. 이 사회에는 인간보다 높은 지능을 갖추고 있으면서 인간과 유사한 감정을 느끼는 AF라는 로봇이 존재합니다. AF는 Artificial Friend의 준말입니다. AF의 역할은 어린이나 청소년을 돌보는 ‘친구’입니다. 사용자인 어린이와 대화를 나누고 놀이도 하고, 병간호를 하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AF마다 고유한 성격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클라라와 로사는 같은 모델의 AF지만 클라라는 로사에 비해 호기심이 훨씬 많습니다. 또 클라라는 인간의 감정에 관해서도 유난히 관심이 많죠. 로사는 궁금증이 별로 없고 오로지 자신이 어느 집으로 가게 될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쇼윈도에 서 있던 클라라는 어느 날 유리창 너머로 조시라는 여자애를 만나게 됩니다. 조시는 클라라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눠 보고는 클라라를 마음에 들어 합니다. 얼마 후 조시가 엄마와 찾아와 클라라를 ‘구입’했고, 클라라는 조시의 AF가 됩니다. 클라라의 주 임무는 건강이 좋지 않은 조시의 건강을 수시로 확인하는 일입니다.
클라라는 진심으로 조시를 좋아하고 걱정합니다. 그래서 클라라의 임무는 자연스럽게 ‘조시의 건강 회복’으로 확장됩니다. 문제는 클라라가 이 임무를 수행하기가 좀 어렵다는 것입니다. 클라라는 인간보다 높은 연산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아이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엉뚱한 해결 방법을 찾습니다.
그것은 바로 ‘태양’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태양광으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AF에게 태양은 생명을 불어넣는 존재거든요.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이 정도까지만 이야기해야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간은 로봇을 착취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혹시 전자제품을 쓰다가 고장 나거나 싫증이 나 버리게 됐을 때 전자제품에게 사과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마 없으실 겁니다. 전자제품에게 미안함을 느끼지도 않고 사과하지 않는 이유는 선풍기가 전자레인지가 생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자제품은 살아있는 존재도 아니고, 생각이나 감정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대부분은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다는 점을 알 것입니다. 자기합리화를 하거나 의식적으로 느끼지 못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가슴 깊은 곳에 죄책감이나 미안함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려동물은 말을 하지 못할 뿐, 생각과 감정을 가진 생명이기 때문에 죄책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래에 함께 살아가게 될 ‘로봇’은 어떨까요? 클라라는 인간처럼 생각하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만, ‘이기심’을 제거한 존재입니다. 클라라가 조시를 끔찍이 생각하는 데에는 맥락이 없습니다. 클라라와 같은 AF가 사용자를 진심으로 좋아하도록 설계되어 있을 뿐입니다. 심지어 사용자가 AF를 버려서 AF가 외로워져도 사용자를 향한 마음은 변치 않습니다.
한결같이 나만 바라보던 AF의 도움이 더는 필요하지 않은 나이가 됐을 때 여러분은 쿨하게 AF와 이별할 수 있을까요? 인간과 유사한 감정을 느끼는 로봇을 필요할 때까지 쓰고 헤어지는 쿨한 이별은 ‘착취’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위와 같이 어려운 질문을 마구 던집니다. 기술이 더 발전하기 전에 미리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습니다. 대비 안 하면 낭패를 보게 될 거라면서요. 그래서 한편은 희망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클라라와 태양>과 같은 사회를 피하고 싶다면 미리 생각해보면 되니까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재미있는 책 없나 고민하신 분이 있다면 <클라라와 태양>을 권하고 싶습니다.
다 읽으시면 저랑 이 책에 관해 이야기 나눠요!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