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년생 어른한테 혼나다
약속 장소는 스파게티집이었습니다. 49년생 이 선생님(🧓)은 먼저 와 계셨습니다. 주먹 인사를 나누고 앉으니 이 선생님께서 친절히 메뉴를 설명해주십니다. 어떤 소재로 대화를 시작하면 어색하지 않을지 고민하며 갔는데 상냥하게 이끌어주셔서 좋았습니다. 마침 이 선생님을 소개해준 친구도 도착했습니다. 파스타 두 개, 리조또 하나를 주문하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취미는 인재양성
27년 차 성남시민이신 이 선생님은 공학자셨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일하셨고, 한국에 들어오셔서도 연구를 하셨습니다. 그러다 정보통신 기기를 만드는 사업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지식을 가르치는 일에도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그래서 사업을 하시면서도 꾸준히 대학에 출강해 강의하셨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현업에서 은퇴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동네 이야기를 주로 여쭐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동네 이야기는 잘 모르신다고 합니다. 신앙, 가족, 인재양성 외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제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셨습니다. 아까 보여주셨던 인자한 미소는 날카로운 질문들 사이로 희미해지고 있었습니다. 이 선생님의 인재양성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입니다.
당선될 확률이 몇 퍼센트라고 생각하나요?
식전빵이 참 '겉바속촉'하다 생각하고 있는데 ‘내년에 당선될 확률이 몇 퍼센트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높게 잡으면 2% 정도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 선생님은 질문을 이어가셨습니다.
“그럼 내년에 정말 당선되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 맞나요? 51%를 차지해야 하는 게임인데 지금 당선 확률이 2%라고 생각한다면서요.”
대답하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왔다 갔다 하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속에는 ‘당선파’와 ‘의미파’가 편을 갈라서 다투고 있습니다.
당선파🏋️♀️: 선거의 목표? 당연히 당선이지! 당선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의미파🧘♂️: 지금 내 실력에 당선되면 더 큰 일이야… 의미 있는 활동을 해서 많이 배우면 그걸로 됐지…
죄책감을 느낀다면 다시 생각해보게
비슷한 질문을 받으면 보통 ‘당선파’로 답변합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의 날카로운 눈빛에 저도 모르게 사실대로 말해버렸습니다. 시작할 때는 ‘뭐, 열심히 하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알아갈수록 막막해지는 것이 사실이라고요. 그런데 동료, 친구들에게 속마음을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무책임한 것 같아 적당히 대답하는데,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이 선생님은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면 죄책감이 들지 않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나서 조금 높은 곳을 겨냥하라는 것입니다. 현재 지지율이 2%인데 51%로 가는 계획을 세우기는 어려우니 5%나 10%를 우선 목표로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목표를 수정해서 주변에 설명하면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타당한 도전’으로 보일 거라는 것입니다. 죄책감을 느낄 일도 없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또 30년 후, 50년 후, 100년 후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싶은지 고민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장기적 안목과 계획을 세워야 지금부터 40년 후에 누군가 ‘그동안 무엇을 위해서 살았느냐?’고 물었을 때 명료하게 대답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선생님께 한참 혼나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 있지도 않은 치밀한 계획을 숨기고 있는 척, 야심에 아주 활활 불타는 정치인인 척 같은 것을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계획을 좀 더 촘촘하고 현실적으로 잘 만들어봐야겠습니다. 제게 도움이 많이 된 이 이야기가 여러분께도 유익했으면 좋겠네요.
아, 최근에 한 방송사에서 찾아왔습니다.
다음 편지에는 방송사에서 왜 찾아오셨는지 써보도록 할게요!
이대호 드림.
PS. 이 선생님 소개해주신 희진님 감사합니다!
PS2. 귀하께서도 가능하시다면 성남시민 소개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