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을 그려야 할까?
‘MZ세대 정치인’을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며 채널A 방송국에서 섭외 연락을 주셨습니다. 제게 부족한 ‘인지도’를 높일 좋은 기회라고 생각에 무척 반가웠습니다.
선거 치르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책 <선거, 버려야 이긴다>에 “알아야 찍고, 좋아야 찍고, 찍어야 찍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유권자가 저를 아는 것이 시작이란 뜻입니다. 읽을 땐 그러려니 했는데 실제로 정치를 해보니 크게 와닿았습니다.
무명 정치인은 자기소개에 써야 하는 시간이 너무 많습니다. 또 모르는 사람을 선뜻 만나주는 분도 별로 없습니다. 반면 유명인은 자기소개를 할 필요 없고 쉽게 새로운 사람을 만납니다. 즉,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더 풍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습니다. 제가 야구선수 이대호라면 얼마나 좋을까 종종 생각하게 되죠.
눈썹을 그려야 하나?
제작진은 저의 평소 업무 활동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혼자 일하는 모습, 동료들과 회의하는 모습, 동네를 돌아다니며 관찰하는 모습, 성남시민 인터뷰 모습 등을 촬영하기로 했습니다.
촬영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동료들과 함께 촬영 준비를 하다 보니 고민이 생겼습니다. 지금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최선일지 판단을 해야 했습니다. 조금 꾸며내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으니까요.
정치적 목표, 관심 정책 같은 내용은 갑자기 꾸며내기 쉽지 않습니다. 또 일단 지금 수준을 솔직히 보여주고 앞으로 성장해서 변화된 모습을 나중에 보여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민이 금방 정리됐는데요. ‘외모’가 고민이 되더라고요.
저는 눈썹 숱이 별로 없는 편입니다. 눈썹 문신하라는 권유를 빙자한 놀림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그렇지만 되려 오기가 생겨 문신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옷차림도 여름에는 반팔에 반 바지, 샌들을 고수합니다. 가을에는 맨투맨에 반바지를 좋아합니다. 정중한 옷차림보다 어딘가 장난스러운 옷차림을 좋아합니다.
놀라우시겠지만 저는 이런 제 모습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막상 방송 촬영을 앞두니 고민이 되더라고요. 당장 눈썹 문신은 어려우니 그리기라도 해야 할지, 바버샵에 가서 포마드 스타일로 머리를 바꿔야 하는 건 아닌지, 옷차림도 좀 단정하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됐습니다. 유권자가 신뢰하는 정치인처럼 꾸며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요.
좋아야 찍는다
촬영 날이 됐습니다. 평소보다 머리를 좀 더 열심히 말렸고, 로션을 꼼꼼히 발랐습니다. 그릴 줄 모르는 눈썹은 그리지 않았습니다. 옷도 평소대로 입었습니다. 결국 평소처럼 하고 온 제 모습을 본 동료 유진님이 한숨을 조금 쉬시고는 노세범이라는 물건을 빌려주셨습니다. 얼굴에 기름기라도 좀 닦으라면서요.
맨투맨 입고 출근하는 성남시장을 다수의 사람이 바라고 좋아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닐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원하는 더 단정한 모습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단숨에 하기는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마치 오래 기른 머리를 잘라내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소개했던 말, “알아야 찍고, 좋아야 찍고, 찍어야 찍는다”에서 두 번째 단계는 ‘호감’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모습을 보여줘야 호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새내기 정치인일 때는 반팔티에 백팩 매고 돌아다니는 모습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장하면 할수록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진화해야 ‘좋아서 찍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듭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좋아해달라는 건 양심 없는 일이니까요.
다큐멘터리는 방영 일이 정해지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궁금하진 않으시겠지만…
올해 안에 눈썹 문신 할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