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성폭력 피해자를 의심하는 방법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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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폭력 피해자를 의심하는 방법에 대해서

얼마 전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면서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이 다시 화두가 됐습니다. 정말 바라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피해자가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하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게 되면 피해자로서는 일상이 어렵습니다. 괴로운 기억을 떠올릴 일이 굉장히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함께 일했던 동료로서, 친구로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말로 위로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민 끝에 글을 써서 언론에 기고하기로 했습니다. 성폭력 피해가 공론장에서 끊임없이 다뤄지는 일에 문제제기하는 글을 써서 많은 사람이 읽으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잘 하면 비슷한 일이 또 생기는 걸 막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여러 언론에 독자 기고로 실어줄 수 있는지 문의했지만 아쉽게도 안 됐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편지로 써 보냅니다.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입니다. 함께 생각해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상처 입는 일은 자기 자신, 친구, 가족, 이웃 누구나 겪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대호 드림.


제목: 우리가 성폭력 피해자를 의심하는 방법에 대해서

성폭력 사건이 생겼을 때 피해자가 거짓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수 있습니다. 의심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공론장에서 공개적으로 의심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공론장에서 제 3자가 피해자 주장의 진위나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성폭력 사건은 대부분 매우 개인적인 일입니다. 당사자가 아니면 사건에 대해 근거를 갖고 이야기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조사 기관이 권한을 갖고 물적 증거를 조사하고 참고인 진술을 받아야 사건에 대한 의미 있는 이야기가 가능합니다. 공론장에서 제 3자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자신의 느낌’과 ‘추론’ 외에는 없습니다. 제 3자가 느낌과 추론을 말하는 것은 본인에게는 의미 있는 행위일 수 있지만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둘째, 공론장의 소통이 여론의 관심으로 확대될 경우 피해자가 큰 고통을 받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이뤄진 대화는 언제든 기사화되어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안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겪은 비극이 세간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상황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큰 고통을 줍니다. 재판으로 최종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다면 문제제기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피해자’일 가능성을 우선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설령 피해자가 거짓 주장을 했더라도 무고죄로 처벌될 수 있지만, 사실을 말한 피해자가 공론장에서 거짓말쟁이 취급을 당하며 받는 부당한 상처는 회복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의심해야 할까요? ‘공론장’이 아니라 ‘법정’에서 다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위와 같은 문제 때문에 우리 사회는 큰 비용을 들여 사법 시스템을 운영합니다. 물론 시스템이 완벽할 수 없습니다. 비효율적인 면도 있고, 개인적으로 억울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법 시스템을 존중했을 때 더 많은 사람을 불의의 피해로부터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 구성원 다수는 시스템을 존중하며 살아갑니다.

최근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유가족 쪽에서 인권위 조사 결과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을 맡은 법률 대리인(이하 ‘대리인’)은 이 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소셜 미디어에 여러 편 올렸습니다. 주로 피해자의 피해 주장과 인권위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을 많은 언론이 보도하면서 여론이 다시 이 사건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대리인’의 주장은 불필요한 의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예를 들면 ‘경찰이 5개월 넘게 강도 높게 수사했지만 성추행 의혹에 대해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경찰은 피의자가 사망해 진술을 받을 수 없어 공식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지 ‘샅샅이 뒤져봐도 아무 것도 없더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또 인권위 발표 내용이 ‘객관적인 증거들이 전혀 없이 피해자 및 참고인의 불확실한 진술에 근거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무리가 있습니다. 인권위는 여러 명의 참고인으로부터 피해자가 고인으로부터 받은 부적절한 메시지를 봤다는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또 고인이 돌아가시기 전날 밤 ‘핸드폰으로 주고받은 게 있는데 이제 와서 문제를 삼는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도 확인했습니다. 당사자와 특정인 진술만으로 판단을 내렸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대리인’은 유족 쪽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나 피해자에 대한 의심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의심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불의의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위험한 공론장을 통하는 것보다 만약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사법 시스템을 이용하자는 사회적 합의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성폭력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자신이 겪은 비극을 끊임없이 뉴스에서 접해야 하는 사회라면 바꿔야 합니다.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가족, 친구, 동료를 지키기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