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틀었더니 나오는 <놀면 뭐하니?>를 보는데 글쎄

지난 주말 계단정복 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녁 8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동료들과 떡볶이를 먹고 들어오긴 했는데, 배가 고팠습니다. 휴대폰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소파에 몸을 묻으니 노곤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잠들 것 같아 TV를 틀었습니다. 이것저것 들춰보다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보게 됐습니다.

<놀면 뭐하니?> 출연진이 방송기자가 돼서 MBC 뉴스데스크를 제작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출연진은 각자 기사 한 꼭지씩 기획하고 취재하고 리포트를 했는데요. 그중 유재석 기자는 ‘키오스크’를 다뤘습니다.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키오스크를 잘 다루지 못해 소외당하는 문제한 편의 뉴스(클립 보기) 다뤘습니다.

우리 엄마가 키오스크를 싫어합니다: 디지털 소외

편의상 ‘디지털 소외’라고 부르겠습니다.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따라 전에는 겪지 않던 불편을 겪게 되는 문제 말입니다. 저는 앞으로 ‘디지털 소외’가 더 많은 사람이, 더 자주 겪는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의 이윤 추구는 디지털 소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은 늘 ‘최적화’를 원합니다. 최적화의 한 방법은 ‘들이는 비용 대비 수익을 많이 낼 수 있는 고객’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모든 고객을 상대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건 큰 비용이 듭니다. 그보다는 수익성이 낮은 고객은 포기하고 수익성이 기준 이상인 고객만 상대하는 체계를 수립했을 때 이윤이 더 큽니다. 즉, 인구통계학적으로 ‘다수 집단’에 집중합니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할수록 ‘최적화’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집니다. 과거 영화관이 키오스크를 설치하지 않고 직원을 많이 뽑았던 까닭은 디지털 소외를 우려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고객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키오스크를 만들 기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기술이 더 발전하면 기업은 고객을 더 세밀하게 나누고, 더 면밀하게 최적화할 것입니다.

역할분담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디지털 소외를 가져옵니다. 저는 ‘소외’를 막기 위해 기술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술 발전이 가져오는 ‘디지털 소외’ 같은 부작용도 있지만, 순기능이 큽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 대부분 기술 발전의 산물입니다. 또 세계화 시대입니다. 개별 국가의 정부가 금지해서 막을 수 있는 기술 발전은 없습니다.

다만 정부는‘디지털 소외’를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기업 활동의 부작용으로 탄생하는 ‘디지털 소외’를 정부가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기업과 정부의 바람직한 역할분담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응’보다 ‘진화’가 낫다

<놀면 뭐하니?>에서 관심 갔던 대목은 ‘복지관에서 키오스크 사용법을 알려준다’는 점이었습니다. 유재석 기자가 인터뷰했던 어르신 한 분이 ‘복지관에서 키오스크 사용법을 배웠는데 막상 영화관에 와보니 배웠을 때 써본 거랑 다른 기계여서 어려웠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부는 이미 ‘디지털 소외’에 대응하고 있었습니다. 디지털 약자의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습니다. 바람직하지만 아쉽기도 합니다. <놀면 뭐하니?>의 어르신이 ‘복지관에 있는 거랑 이거랑 다른 기계여서 어렵더라’고 하시잖아요.

정부가 디지털 약자의 ‘적응’을 돕는 것도 좋지만, 저는 기술의 ‘진화’를 촉진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소외가 발생하지 않고, 누구나 편리하게 쓸 수 있는 방향으로 기술을 더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키오스크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어르신들이 키오스크를 불편해하는 까닭은 ‘직원한텐 말로 하면 되는데 키오스크는 글씨도 많고 이것저것 눌러야 해서’입니다. 만약 직원과 대화하는 것처럼 음성으로 주문할 수 있는 키오스크를 만든다면 어떨까요? 영화 <아이언맨>에 나오는 자비스처럼 이용자의 요구에 맞는 답을 주는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키오스크 말입니다.

정부 공무원들이 ‘자비스 키오스크’를 개발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정부는 각종 연구개발사업의 기획자입니다. 세금으로 연구개발을 지원해 수많은 기초연구, 실용기술을 만듭니다. 정부가 기술의 ‘진화’로 ‘디지털 소외’를 해결해야겠다는 목표를 가질 수만 있다면, 대학, 연구기관, 기업이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도록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복잡하다는 핵무기🔥도 우주 비행선🚀도 다 정부가 기획해서 만들었습니다. 버튼만 누르면 우리 할머니에게 친절하게 말 걸어주는 키오스크가 핵무기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울까요?

날이 많이 춥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