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3부작의 마지막 결론

크리스마스를 앞둔 금요일 밤입니다.
이런 날 참 시간이 잘 안 가는데,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오늘은 <성남 재개발 3부작: 무책임한 네 집 마련>의 3부입니다. 3부는 가장 어려운 ‘대안’입니다. 대안을 찾기 위해 동료들과 자체 세미나도 열고, 재개발 관련 NGO 단체에도 문의하고, 공론장 플랫폼 얼룩소에 글도 올려서 조언을 구해봤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구상한 세 가지 대안을 소개합니다. 성남시 재개발 과정에서 모두가 존중받고, 절차가 합리적으로 이뤄지기 위해 성남시장이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하나. 세입자 대상 설명회를 열자

성남금광 도심복합사업 주민설명회 (21. 12. 23)

여러분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는 집과 동네가 재개발된다고 상상해보세요. 재개발 절차와 본인의 권리를 자세하게 파악해서 대응 전략을 치밀하게 수립하실 수 있을까요? 저희 할머니는 삼촌에게 도움을 청해 삼촌이 대신 처리했던 기억이 납니다. 현장에서 만난 임 선생님은 ‘재개발 사업이 너무 복잡한데 진행 절차와 세입자의 권리를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손해 보고 그냥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고요.

재개발 할 때 세입자 대상 설명회를 열고, 설명자료를 만들어 배포해야 합니다. 재개발 진행 과정에서 여러 차례 주민 대상 설명회가 열립니다. 근데 주택이나 상가를 소유한 주민만을 대상으로 하는 자리입니다. 여기에 빠진 세입자 정보 제공 기능을 성남시의 업무로 추가해야 합니다. 재개발 과정에서 세입자로부터 문의를 받아 상담과 조언을 제공하는 창구도 필요합니다. 정확한 정보가 있으면 세입자가 부조리한 일을 덜 겪게 되고,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갈등도 줄어들 것입니다.

둘. 겨울철에는 강제철거를 금지하자

세입자를 쫓아내는 강제철거를 아예 금지할 수 없습니다. 주택 소유자의 재산권은 보호받아야 하는 소중한 헌법적 권리입니다. ‘합의철거’만 가능하다면 재개발은 아예 이뤄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세입자의 주거권 역시 아주 중요한 권리입니다. 소유자는 큰 이익을 얻지만, 세입자에겐 좋은 것 없는 재개발에서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정부는 타협점을 잘 찾도록 지원할 책임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타협점은 ‘겨울철에는 강제철거 하지말자’ 입니다. 사례도 있습니다. 서울시는 ‘겨울철(12월 - 2월)에는 강제철거를 제한(주거환경정비조례 제68조)’합니다. 철거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에 문의해보니 겨울에 강제철거가 이뤄지는 경우가 있긴 하다고 합니다. 그때 법률에 따라 군수, 시장은 ‘겨울철 강제철거’를 중재할 수 있습니다. 사례도 있습니다.

성남시에는 이런 조례가 없어 저희가 다녀온 곳에서 최근 강제철거가 이뤄졌습니다.

셋. 갈등 조정자 역할을 하자

세입자 대책위원회와 재개발 조합 양쪽과 이야기를 다 해보니 서로 오해가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입장 차이가 크다 보니 대화 자리 자체가 굉장히 부담스럽고, 그래서 이야기 자체를 서로 하지 않다 보니 실제보다 더 서로를 부정적으로 인식합니다. 그렇지만 세입자 대책위원회와 재개발 조합이 자주 만나 대화하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해 때문에 갈등이 커지면 세입자는 불안하고, 조합은 사업 기간이 길어져 손해를 봅니다.

성남시가 양쪽을 자주 만나 대화를 하면 어떨까요? 주기적으로 대책위의 고민도 듣고, 조합의 고민도 듣는 겁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각자가 가진 오해를 파악할 수 있고, 조심스럽게 사실관계를 정확히 설명할 기회도 생길 것입니다. 마치 ‘노사협상’이 잘 되지 않을 때 정부가 중재해서 합의점을 찾는 것처럼요. 두 사람 간에 합의가 되지 않을 때 양쪽이 다 신뢰하는 제삼자가 중재하면 결론이 나는 경우가 있잖아요?

한계: 가난한 세입자가 머물 집은 늘어나지 않는다

위 대안들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전개 과정을 부드럽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재개발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 하는 세입자가 머물 수 있는 집이 늘어나거나 선택지가 넓어지는, 근본적 해법은 아닙니다. 재개발할 때 임대주택을 더 많이 만들게끔 하거나, 정말 대책이 없는 가난한 세입자를 위한 영구임대주택 알선 같은 실질적 대안도 있어야 합니다.

더 많은 고민과 공부, 조사와 인터뷰가 있어야 ‘실질적 대안’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해서 이번 편지에 넣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세입자의 삶이 전혀 나아지지 않는 ‘무책임한 네 집 마련’ 문제를 정말 해결해보고 싶습니다. 선거까지 시간이 많이 남진 않았지만, 치열하게 더 공부해서 대안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쉽지 않겠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겠죠?


혹시 제게 지혜를 빌려주실 분이 생각나시면 꼭 좀 소개해주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