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장! 내 명함 나왔나?

이재명의 분당갑캠프 이야기 (1)

이 부장! 내 명함 나왔나?

금요일인 오늘까지 이번 주 내내 얼음 왕국이네요!
부디 춥지 않게 잘 지내셨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재명 캠프의 우리 동네 지부(branch)라고 할 수 있는 ‘선거연락소’에서 자원봉사 중입니다. 최근에는 상근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합니다. 오늘은 이곳에서 만난 가장 인상적인 분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사건은 화요일 오전 10시 당원 한 분이 선거연락소를 찾아오면서 시작됐습니다.

유세단장에게 내 뜻을 전해주시오

한가한 오전 10시쯤이었습니다. 박 선생님이 “안녕하십니까!”라고 크고 우렁차게 인사하고 들어오셨습니다. 80대 중반의 박 고문님을 처음 본 순간 뽀빠이 아저씨 이상용 씨가 떠올랐습니다. 박 고문님은 작은 키에 우람하셨고, 아주 활력이 넘치는 분이었습니다. 제가 용건을 여쭈니 ‘유세단장’을 만나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박 고문님은 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이 되기 전부터 지지했고 여러 번의 선거를 도왔다고 했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직 굉장히 건강하지만, 연세가 팔십이 넘었으니 이번 선거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최전선에서 뜨겁게 마지막 승부를 펼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사진: 이재명의 분당갑캠프 유세차

박 고문님은 유세차량의 운행 경로를 지휘하고, 여차하면 마이크를 직접 잡고 연설을 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러나 유세단장님은 그 바람을 들어드릴 수 없었습니다. 이 추운 날 80대 어르신이 하기에는 위험한 모험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유세단장님의 판단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할 일이 있어 마음 조급한데 그의 이야기는 끝이 없네

다음 날 박 고문님이 또 오셨습니다. 유세단장님과 이야기를 이미 나누셨는지 좀 시무룩하셨습니다. 마침 사무소에 저 말고 다른 사람이 없어 잠깐 인사만 드릴 요량으로 마주 앉았습니다. 근데, 박 고문님의 이야기는 한 시간이 넘도록 끝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마지막 선거를 제대로 한 판 치르지 못하게 되어 아쉽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자신을 만날 때마다 “고문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라고 말해줘서 좋았다는 이야기, 자녀가 군포시청 공무원인데 어느 부서에서 일하는지 도통 안 알려준다는 이야기, 한창때보다 키가 7cm나 줄어서 얼마 전 바지를 죄다 수선했다는 이야기까지 자세히 들려주셨습니다.

사실 저는 오전 중에 처리할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 업무를 봐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혹시 중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 드려야 하니 명함을 하나 주실 수 있냐고 여쭸습니다. 박 고문님은 지갑에서 꼬깃꼬깃 명함을 한 장 꺼내주셨는데요. 거기에는 녹색 소나무 민주당 로고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민주당이 2011년까지 썼던 로고니까 10년도 더 된 명함입니다.

신, 구명함 대조

생경했습니다. 할머니 서랍을 뒤지다 우연히 할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고문님 혹시 명함 안 필요하세요?

마침 제가 캠프에서 명함 발급을 맡고 있습니다. “이 명함 너무 오래된 것 같은데, 혹시 새로운 명함 안 필요하세요?”라고 여쭤봤습니다. 박 고문님 표정이 환해졌습니다.

“이 부장(이라고 저를 부르십니다), 그거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안 그래도 내가 어디 가서 우리 이 후보 선거운동 하려면 명함이 필요하긴 하지. 그게 있다면 내가 아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명함 발급은 2~3일 정도 걸립니다. 그 사이 박 고문님은 매일 10시에 찾아오셨습니다. 명함 빨리 받고 싶어 오시는 것 같은데, 내색하지 않으시려는 것 같더라고요. 한참 앉아 계시다가, “이 부장, 그건 아직 안 나왔습니까?”하고 슬쩍 묻고 가시는 고문님이 참 귀여우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저께 오후 명함이 와서 바로 전화 드렸습니다.

“고문님, 내일 찾으러 오세요!”


84세 박 고문님은 여전히 모험을 꿈꿉니다. 노인도 지루한 삶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박 고문님을 모험에 초대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누누히 말해온 정치인의 대선 후보 선출은 운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오래 지지해온 정치인과 인생의 대미를 장식할, 아주 근사한 ‘마지막 모험’을 떠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아쉽게도 박 고문님이 기대했던 ‘유세 차량 지휘자’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명함 통을 꼭 쥐고 사무소를 떠나는 박 고문님의 발걸음은 보이스카우트 대원처럼 빠르고 씩씩했습니다. 그 뒷모습을 보며 박 고문님이 경로당과 복지관을 경쾌하게 누비는 상상을 했습니다. 박 고문님의 모험이 신나고 재미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면서요.

이번 모험이 박 고문님의 마지막 모험은 아닐 것입니다. 노인의 삶에 음표를 만들고 싶은 제가 성남시장이 되면 이 도시의 어르신들은 흥미로운 초대장을 더 자주 받게 되실 테니까요. 우선 박 고문님께 산책캠프 크루 초대장부터 보내드려야겠네요.

추운데 이번 한 주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재미있게 늙어가고 싶은 소망을 담아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