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가 집이 없는데, 왜 집값 오르는 공약을 내야 이길까?
곧 장마가 시작될 것 같은 화요일이네요!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 편지는 ‘의무방어전 문제’ 2탄입니다. 지난 편지에서 ‘누가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하든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공약을 낼 수밖에 없다’는 ‘의무방어전 문제’를 소개했습니다. 오늘은 의무방어전 문제가 생기는 원리를 분석하겠습니다.
소유자와 세입자의 차이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한 표씩 가집니다. 40%의 (부동산) 소유자 집단보다 60%의 세입자 집단이 더 많은 표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유자 보다는 세입자의 이익에 부합하는 공약이 내는 것이 유리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한 표이지만 선거캠프 입장에서는 소유자 집단의 표가 더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소유자와 세입자의 특징을 비교해보면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소유자 집단은 명확한 요구사항을 가지고 있고, 세입자 집단은 그렇지 않습니다. 소유자 집단은 집 근처에 지하철을 만드는 일, 건축 규제를 완화해 재건축, 재개발의 기대 수익을 높이는 일 등을 분명하게 원합니다. 반면 세입자 집단이 자산 가치를 높이기 위한 요구는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둘째, 소유자 집단은 조직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활동합니다. ‘OO동에 신규 지하철 역사 만들기 모임’, ‘N호선 연장 추진 본부’, ‘OO동 공공임대주택 건립 반대 위원회’ 같은 것들입니다. 요즘은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소통하며 활동합니다. 방마다 적게는 100여 명, 많게는 1,000명 이상이 참여합니다. 반면 세입자 집단은 조직이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같은 한 표가 아니다
선거캠프 입장에서 생각해봅시다. 소유자 집단은 분명한 요구가 있습니다. 요구를 수용할 경우 몇 개의 표를 얻을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해당 현안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단톡방 등을 통해 ‘우리 캠프가 당신의 요구를 수용했으니 뽑아주세요’라는 이야기를 전해서 홍보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세입자 집단은 특정한 요구도 없고 조직도 없습니다. 선거캠프가 선제적으로 세입자 집단에 도움이 될만한 의제를 기획해야 하고, 필요성을 설득해야 합니다. 공약으로 만들었을 때 그 사실을 알릴 통로도 만들어야 합니다. 투입한 노력에 비해 선거에 도움이 안 됩니다.
그 때문에 선거에서 승리해야 하는 선거캠프는 ‘조금 노력하면 획득할 수 있는’ 소유자 집단 표를 최대한 확보하는 전략을 취하게 됩니다. 이 전략을 취하지 않으면 소유자 집단 표가 모조리 상대편에게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양측이 같은 주거, 교통 공약을 내고, 그것이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은 ‘의무방어전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격차 보정 장치
물론 시민이 교통, 주거 공약을 요구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특히 지금처럼 미래가 불안한 시대에 소유한 자산가치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 재개발, 재건축은 신규 주택을 공급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보금자리 마련의 기회를 확대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다만 격차 보정 장치 없는 ‘의무방어전’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신도시 개발처럼 신규 택지 개발이 함께 이루어지는 경우가 아니라 성남처럼 이미 완성된 도시의 인프라를 고도화하는 경우에는 격차 확대 가능성이 더 큽니다.
재건축, 재개발할 때 임대주택을 의무적으로 지게 돼 있습니다. 개발 이익 일부를 사회에 공유해 불평등 심화를 억제하는 ‘격차 보정 장치’입니다. 현재 정치 환경에서 세입자 집단 등이 ‘격차 보정 장치’를 요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의무방어전’은 격차를 심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1, 2편에 걸쳐 ‘의무방어전 문제’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저는 소유자와 세입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면서 불평등이 심화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다음 편지에는 제가 생각하는 문제 해결 전략에 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휴, 참 어려운 문제네요!
이번 주말부터 장마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긴 가뭄에 충분한 단비가 되기를 함께 바라보아요!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