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절이와 묵은지 중 무엇을 더 좋아하세요?
신당역 살인사건 소식에 마음 무겁고 슬픈 한 주였습니다.
해야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막막해서 입이 잘 안 떨어집니다.
고인의 명복과 유가족의 회복을 빕니다.
오늘은 ‘민주당의 문제를 해결하는 2030 당원 모임 그린벨트’를 하면서 생각해보게 된 ‘겉절이와 묵은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갑자기 웬 김치 이야기냐고요?
겉절이 맛집 더불어민주당
지난해 참석했던 한 간담회가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청년’, ‘정치’를 주제로 한 간담회였습니다. 삼십여 명의 참가자 중 한 명으로 참석했습니다. 발언 중에는 당사자의 경험담도 있었고 구조적 문제에 대한 분석도 있었습니다. 유익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참석한 기성 정치인의 공감과 다짐도 있었습니다. 다 같이 웃으며 사진을 찍고 헤어졌습니다. 끝입니다. 모든 것이 쿨했습니다.
이런 단발성 공론장을 ‘겉절이’에 비유해보겠습니다. 깊이 숙성시키는 후속 과정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겉절이만의 상큼한 맛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단발성 공론장도 의미가 있습니다. 정당과 정치인은 다양한 시민의 의견을 파악해야 합니다. 주제를 정해 의견을 듣고 문제를 파악하고 과제를 발굴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과정입니다.
문제는 균형입니다. 겉절이는 맛있지만, 겉절이만으로 상을 차리기 어렵습니다. 허기진 배를 채우려면 찌개를 끓일 묵은지도 필요합니다. 문제를 잘 모를 때는 겉절이 공론장이 유용하지만, 문제가 파악된 뒤에도 단발성 공론장만 운영해서는 안 됩니다. 묵은지 같은 숙의 공론장이 필요합니다.
묵은지를 잘 안 담그는 이유
8월 중순 새로 시작한 그린벨트는 요즘 묵은지를 담그고 있습니다. ‘2030 출마자 연대’였던 그린벨트 V1은 7월에 해산했습니다. 광복절에 그린벨트 V2가 출범했습니다. 새로운 정체성은 ‘더불어민주당의 문제를 해결하는 2030 당원모임’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문제를 해결할지 미정입니다. 함께 해결할 문제를 정하는 절차를 두 달간의 숙의 토론으로 정하는 중입니다.
그 과정이 그야말로 묵은지입니다. 멤버들이 각자가 생각하는 민주당의 문제를 글로 써서 냈습니다. 41개의 의견을 유사한 것끼리 묶어 5개 주제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그룹별로 ‘문제 해결 로드맵’을 기획하는 토론을 여러 차례 진행 중입니다. 그룹별로 1개씩, 5개의 ‘문제 해결 로드맵’이 완성되면 총투표에 부칩니다. 그중 가장 많은 멤버가 선택한 문제를 그린벨트의 과제로 삼게 됩니다.
듣기만 해도 길고 지루하시죠? 안 그래도 멤버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겉절이 맛집이 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삭하고 새콤한 겉절이는 바로 맛볼 수 있지만, 묵은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숙의 공론장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것도 장벽이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인지도 알 수 없으니까요. 흥미가 떨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민주주의의 즐거움
저는 그린벨트 숙의 공론장을 기획한 TF의 일원으로 책임이 있는 사람인데요. 그런 저 역시도 예외는 아닙니다. 잦은 회의에 따른 피로감과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을 느낍니다. 묵은지는 많은 인내와 자기 설득을 요구합니다.
그렇지만 묵은지에는 분명 즐거운 순간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지 못했던 의견을 접해 사고가 확장되거나, 제 아이디어에 대한 건설적 비판을 받아 아이디어를 개선하는 일이 생깁니다. 가끔 혼자서는 답이 안 나왔던 문제의 실마리를 얻기도 합니다. 민주주의의 즐거움입니다.
민주주의 즐거움을 잘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많은 구성원이 민주주의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공론장을 설계하는 것, 그것이 여러 사람이 함께 숙의 공론장을 끝장까지 넘기는 비결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10월이면 묵은지가 다 익습니다.
그린벨트가 선택한 문제가 정해지면 꼭 알려드릴게요.
묵은지 장인이 되고 싶은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