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이대호의 정치 방침서
목표와 각오, 그 중간 어디에 해당하는 것
여러분, 새해부터 일하시라 공부하시라 고생이 많으시지요?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새해 계획을 세우러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실천 계획을 짜다가 보니, 먼저 관통하는 ‘방침’을 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올해 하려는 정치를 관통하는 방향성’에 관해 궁리를 한참 하다 왔습니다. 오늘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이대호의 ‘정치 방침’입니다.
하나. 이웃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에 집중하자
회사를 관두고 성남시장 선거 준비를 막 시작한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계단정복지도 프로젝트를 할지 말지 고민이 깊었습니다. 계단정복지도 프로젝트가 선거 운동에 직접적인 도움은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결과를 낳을 것 같기는 했거든요.
그때 친구 K를 만나서 계단정복지도 프로젝트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K가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꼭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덕분에 450여 명의 사람들이 이웃을 위해 10,000여 개의 접근성 정보를 모은 계단뿌셔클럽이 탄생했습니다.
K: 대호님의 정치가 갖는 장점은 본인이 속한 커뮤니티에서 변화를 만드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예요. 크고 거창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저는 설득이 안 되거든요.
연말에 만난 K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계단뿌셔클럽(SCC)을 할 시간에 ‘더 정치인스러운 활동’을 해야 하지 않나 고민해본 것이 사실입니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행사 막 다니고, 사진 찍어 올리고, 지역 언론에 소개되고 등등. 그러나 돌이켜보니 SCC보다 더 나은 선택은 없었습니다. 다른 어떤 것을 했어도 선거 결과는 같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SCC를 통해 제게는 여러 동료가 생겼습니다. 그 시간에 지역 행사를 성실히 다녔다면 동료는 못 만들었을 겁니다.
또, SCC는 제가 자부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줬습니다. 정책 연구, 현안에 대해 말하기, 정치 관련 행사 참여 등의 활동만 했다면 정치를 중도 포기했을 것 같습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당장 누군가의 삶에도 기여하기 어려운 활동들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SCC는 당장 이웃의 삶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입니다.
둘. 인류사적 문제 해결에 도전하자
성남시장 선거를 치르면서 갖게 된 고민이 아주 많은데요. 그중 핵심은 ‘성남시장이 된다고 해서 경제적 불평등이나 기후위기 같은 진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우리 산책캠프의 슬로건은 ‘오늘 좋아하는 사람과 산책할 수 있는 도시’였는데요. 이 슬로건을 실현하고 지속하려면 성남시장만의 권한과 예산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하반기 이래 부동산 가격 변동을 보면서 더 심증이 굳어졌습니다. ‘오늘 좋아하는 사람과 산책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려면 부동산 가격 안정이 중요합니다. 소득에 비해 부동산 가격(PIR)이 너무 높아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난 하반기 이래의 부동산 가격 변동을 보면 부동산 가격 관리는 성남시장은 물론 대한민국 대통령도 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부동산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기후위기 문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개별 국가, 지역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개별 국가, 지역의 힘이 없으면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전세계의 정치인이 인류가 마주한 문명사적 문제를 해결하고 도전하는 일에 동참해야만 합니다. 전지구적 협력을 상상하고, 국제적인 연대망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지역 공동체 내에 주어진 권한만으로 공동체를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은 비관에 빠지게끔 합니다. 그러나 지역 공동체를 초월한 초국가적 연대체를 상상하면 낙관할 수 있습니다. 이 낙관의 계기가 된 글을 한 편 소개합니다. 오드리 탕 대만 디지털부 장관과 경제학자 글렌 웨일이 쓴 Plurality라는 글입니다. 더 넓고 깊은 민주주의로 위기를 헤쳐 나가자는 제안입니다.
인류사적 문제 해결에 도전하는 것과 이웃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은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웃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정치인에게 유권자는 자신의 권한을 넘겨주지 않습니다. 권한을 넘겨받지 못한 정치인은 인류사적 문제 해결에 도전하는 초국적 연대를 만들 수 없습니다.
너무 거창한 이야기를 쓴 것 같아 조금 민망하네요.
그렇지만 신년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해보겠어요?
제가 둘 중 어느 하나 놓치지 않도록 잘 감시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여러분 감기 조심하세요!
최근 몸살로 고생한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