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호되게 야단 맞다
쉬운 선택과 옳은 선택
지난 주말 오랜만에 친구 박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유능한 스타트업 창업자인 박 선생님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좋은 카페와 식당을 많이 알고, 아주 웃기고, 다정하고도 냉정합니다. 그리고 훌륭하게도 이대호의 정치도전기 구독자입니다. 제가 하는 일들을 잘 알고 있고, 예리한 조언을 들려줍니다. 정말 고마운 친구입니다.
신맛이 나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근황과 계획을 나눴습니다. 긴장감 없이 시시콜콜 다 이야기하고 있었는데요. 갑자기 이야기를 듣던 박 선생님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대호님, 이 이야기 할까 말까 10번 고민했는데요. 해도 될까요?”
어… 뭐야… 무섭잖아…
야, 이대호, 너, 집중 못 하고 있어
“이대호라는 정치인이 점점 뾰족함을 잃어가는 것 같아요. IT 업계 직장인이었고, 생활인의 감각을 갖고 있고, 문제해결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인상이 뚜렷했는데, 점점 그런 것이 흐려지는 것 같아요. 너무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는 거 알아요? 그리고 개인의 성장보다 다른 사람 도와주는 종류의 일이 많은 것 같고요.”
아이고… 따가와라…
“내가 이대호 컴퍼니라는 회사 직원인데, 사장님이 회사는 뒷전이고 남의 회사 일만 도와주러 다니면 어떨 것 같아요? 이대호라는 정치인이 활동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 이대호한테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이대호라는 정치인이 성과를 내야만 대변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더 무겁게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려면 ‘집중’을 해야죠.”
변명: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요…
사업과 정치는 비슷하지만 차이도 있습니다. 정치는 ‘지키는 일’이고 사업은 ‘개척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사업가는 땅바닥에 떨어진 공들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골라서 배트로 가능한 한 멀리 쳐내면 됩니다. 정치인은 쏟아지는 공들을 글러브로 최대한 받아내야 하는 입장입니다. 쏟아지는 공 중에서 어느 하나 절박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제가 ‘집중’하지 못하게 된 것도 비슷한 이치입니다. 정치 활동을 하다 보니 이 문제도 중요하고, 저 문제도 중대합니다. 하나하나 절박한 사연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자주 휩싸입니다.
가깝게는 동료, 친구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일에 빠져듭니다. 선거 캠프 참여부터 행사 도우미까지 다양한 일들을 하게 됩니다. 멀게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문제들이 잘 해결되지 않는 것을 보며 ‘나도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고민과 죄의식에 빠지게 되는 식입니다. 며칠 전 성남의 태평동에서 생활고로 세상을 떠난 모녀 사건을 보면서도 주제넘은 생각에 빠집니다.
“중요한 일인데… 내가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나쁜 선택은 없다, ‘쉬운 선택’이 있을 뿐
변명을 쭉 들은 박 선생님은 제게 “나쁜 선택은 없다”고 했습니다.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걸 다 받아내는 ‘쉬운 선택’, 이게 나쁜 선택은 아닙니다. 다 필요한 일들이긴 하니까요. 그러나 그 선택은 ‘최선의 옳은 선택’일 가능성은 작을 거라고 합니다. ‘하면 좋을 일’을 모조리 쓸어내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만 남겼을 때, 그것이 목표 달성의 최단 거리, ‘옳은 선택’이라고 본인은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옳은 선택’을 위해서는 ‘포기’하고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크고 작은 배반이 필요합니다. 타인의 기대를 깨뜨려야 하고, 실망시켜야 하고, 따라오는 죄책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옳은 선택은 어렵고 쉬운 선택은 쉽습니다. 별다른 성과를 내지는 못한 ‘착한 사람’이 될 것인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위대한 정치인’이 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벌써 밀려오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