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거 사람들이 싫어해”

L은 저의 소중한 친구입니다. 고등학교 친구 중 연락하며 지내는 친구가 10명이 채 안 되는 것 같은데요. 그중 한 명인 오랜 친구입니다. 육아로 바빠 자주 못 만나는데, 얼마 전 신년회 겸 만났습니다. 즐겁게 근황을 나누다 L이 물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무슨 정치를 할 거야?”

“그런 것 좀 하지 마, 사람들 다 싫어해”

정부가 성남시 서현동에 2,000세대 규모의 아파트를 공급하려는 계획이 있습니다. 2019년에 발표했지만, 아직 삽도 뜨지 못했습니다. 주변 주민들 반대가 아주 크기 때문입니다. 서현동을 지역구로 둔 안철수 국회의원, 신상진 성남시장은 ‘서현지구 공공주택 백지화’를 공약하고 당선됐습니다. 저는 이 ‘백지화’를 막아 누군가 보금자리를 구할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별 관심 없이 넘어갈 줄 알았는데 “그런 것 좀 하지 마”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그거 하면 누가 좋아해? 조용하게 살고 싶어 하는 동네 사람들 피곤하게 하는 일이잖아. 그리고 2,000세대 공급한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누구는 들어가고 누구는 못 들어가잖아. 그럼 못 들어간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만 커질 거고. 그게 정말 누구를 위한 일인지 모르겠다. 너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해야 뽑히지!”

L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동네 친구들 반응도 비슷했습니다. 저처럼 이 동네에서 초, 중, 고를 다 졸업하고 여전히 살고있는 G와 P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좋아하는 평화로운 장면들

P: 나도 이 동네에 내 집 마련하고 싶지만, 그 청약 내가 될 거 같지는 않거든. 그럼 반갑지 않을 것 같아. 한적하고 여유로운 율동공원 가는 길목에 아파트 생기면 복잡해져서 싫을 것 같고 말이지.

G: 솔직히 이 동네에서 자란 우리 같은 애들한테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정치가 필요한지 잘 모르겠네. 웬만큼 먹고살 만한 애들이 많잖아. 그래서 정부에 다들 기대도 별로 없는 것 같아.

서글픔

서글퍼 보이는 이대호

친구들의 다정한 냉소를 만나자 저의 패기는 장마철에 산책을 못 나간 강아지처럼 풀이 죽어버렸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라 더 서글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공공주택 백지화 반대 운동’ 구상을 이야기했을 때 호평해준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성남시민이 아니었습니다. 정작 이 동네에서 함께 자란 주위 친구들 중에 ‘찬성 입장’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서현동 주민들은 반대하더라도 청약을 넣어볼 수 있는 또래들은 반길 거로 생각했습니다. 거칠게나마 여러 통계를 교차해 잠재 수요자 규모 추정도 했습니다. 성남시민 93만 명 중에서 (1) 2030 세대이면서 (2) 가구원 중 주택 소유자가 없는 사람, 16만 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캥거루족이거나 신혼부부이거나 직장인 1인가구일 거로 수요자 페르소나도 상정해봤습니다.

그런데 실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 가정이 흔들렸습니다. 보금자리 마련이 어려운 시대에 주택공급을 가로막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공공주택 공급 백지화’ 공약을 건 정치인의 당선에 서글픈 마음이 드는 사람, 모두가 혜택을 보지 못해도 주택 정책이 절박한 상황에 있는 누군가를 구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혹시 저 말고는 없는 것이 아닐까요?

정치는 누군가를 대변하는 일입니다. 제가 ‘백지화 반대 프로젝트’에서 대변하려는 사람은 ‘공공주택 공급 백지화 결정에 서글픔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정작 그런 이들이 저의 상상과 관념 속에만 존재하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사려는 사람이 없는 물건을 만들고 있는 느낌입니다. 저는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고 있는 걸까요?


이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는 어떻게 하기로 했을까요?

다음 주 편지에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히히~ 궁금하시죠~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