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이야기
때는 기원전 432년입니다. 아테네 사람들에게 큰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옆 나라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협박합니다. ‘아테네 땅 일부를 내놓고 무역 봉쇄를 풀어라’는 것입니다. 들어주지 않으면 아테네를 공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크게 동요했습니다. 많은 시민이 평화조약을 맺어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전쟁을 피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정치인 페리클레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페리클레스는 시민들이 모여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민회’에 가서 말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저들에게 양보하면, 저들은 두려움 때문에 그것을 들어 주었다고 생각하고서는, 즉시 다른 더 큰 무언가를 요구해올 것입니다. 반면 여러분이 단호히 거절하면, 저들에게 우리를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게 될 것입니다.”
설득력의 출처 ‘비전’과 ‘헌신’
페리클레스는 이상의 연설로 아테네인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이야기를 역사에 기록한 투키디데스에 따르면 이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페리클레스는 전쟁 승리를 위해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뭉치자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버려야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페리클레스의 말대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페리클레스의 연설을 들은 시민들이 생각을 바꾸어서 ‘자신의 것을 잠시 포기해도 그것들을 곧 다시 찾을 수 있고 더 큰 것들을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장시은, 2015) 대의명분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페리클레스의 비전이 자신의 더 자유롭고 풍요로운 미래를 상상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비전의 힘입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자신과 입장이 다른, 성난 군중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제게 화를 내고 계시지만, 저는 제 자신이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필요한 바를 분별해낼 수 있고 그것을 이해시킬 수 있으며, 이 도시를 사랑하고 재물에 약해지지 않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페리클레스의 주장에 비판적이었던 사람들조차 그의 아테네 공동체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의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삶으로 증명해온 그의 ‘헌신’이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새분당플랜
페리클레스가 성남의 길거리 정치인이었다면 저처럼 서현동에 공공주택을 짓는 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성남은 빠르게 늙어가고 있습니다. 분당이 1기 신도시의 대표적인 성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도시에 밀려든 신혼부부들과 함께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생명력을 불어넣던 사람의 유입과 순환이 끊기고, 이제 분당은 고여가는 도시입니다. 추세를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공공주택을 짓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접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현재 이 공동체가 처한 위기를 설명하고, 그 위기를 극복할 더 거시적인 청사진을 제시하고, 그 청사진에 필요한 것 중 하나가 ‘공공주택’이라고 말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제가 태어날 무렵의 정부가 1기 신도시 분당 계획을 발표하면서 ‘시범단지’를 보여준 것처럼 말입니다.
곧 1기 신도시 재건축 시점이 도래합니다. 앞으로 50년을 버텨줄 계획이 필요합니다. 이때 제가 제시할 이 도시의 미래 비전을 저는 ‘새분당플랜’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새시범단지’를 먼저 만들어 ‘새분당’의 청사진을 보여주자고 할 것입니다.
‘새시범단지’, 이것이 제가 그동안 이야기해온 서현지구 공공주택의 새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