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기름 섞은 간장에 찍어 먹는 두부 부침

계단뿌셔클럽 (28)

참기름 섞은 간장에 찍어 먹는 두부 부침

화창했던 지난 일요일, 저는 도봉산으로 향했습니다. 등산하러 간 건 아니고요. 계단뿌셔클럽(SCC) 도봉지부의 역사적인 첫 주차 정복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도봉산역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켜고 잠깐 동네를 둘러봤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봉산역에 ‘계단 정복’이 꼭 필요할까?”

SCC '23 봄 시즌 1주차

도토리묵, 두부 부침, 부추전

도봉산 가는 길

저는 등산을 ‘조금’ 좋아합니다. 자주 다니지는 않지만, 등산 가자는 제안을 잘 거절하지 않습니다. 산을 오르는 것은 사실 그렇게 즐기지 않는데요. 산 주변 식당에서 파는 특유의 음식을 아주 좋아합니다. 참기름 냄새 솔솔 나는 두부 부침, 얇게 바싹 튀긴 부추전, 매콤 상큼하게 상추랑 무쳐서 먹는 진한 도토리묵, 운동도 했겠다 신나게 양껏 먹을 때 무척 행복합니다.

도봉산은 명성만 듣고 처음 가봤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등산객들로 정말 가득하더라고요. 정복 활동은 오후 2시에 시작합니다. 이미 등산을 마치고 내려온 등산객들이 역 주변의 식당가들을 빽빽이 메우고 있었습니다.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막걸리를 기울이며 김치전을 찢어 먹는 모습들이 정말 즐거워 보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휠체어나 유아차를 쓰는 친구와 약속 장소 정할 때 도봉산에서 만나자고 하시겠어요? 저는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산 주변에 있는 토속 음식점들은 접근성이 아주 안 좋을 것 같거든요. 막상 가도 진입이 아주 어려울 것 같아서 다른 동네에 갈 것 같습니다. 아무리 진하게 쑨 도토리묵의 고소한 맛을 같이 나누고 싶더라도 말이죠.

의외로 갈만한 곳 많다

4,500원 칼국수

그런데 편견이었습니다. 물론 접근성이 나쁜 식당들이 많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오래된 집을 개조해서 계단을 6개 거쳐야 들어갈 수 있는 식당들이 있더라고요. 그렇지만 모든 곳이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한 군데, 한 군데 정복하다보니 교통수단과 잘 연계하면 얼마든지 잘 이용할 수 있는 식당과 카페가 많습니다.

계단뿌셔클럽이 도봉산 근처 모든 식당의 ‘계단 정보’를 수집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동약자와 그 가족, 친구들의 선택권이 확대됩니다. 등산로 주변에서만 파는 고소한 부추전 땡기는 날, 도봉산 자락에서 막걸리 한 사발 기울이는 재미를 누구나 즐길 수 있습니다. ‘가기에는 불편하지 않을까?’ 지레짐작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네에 갈만한 식당이 어디지?’하고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계단뿌셔클럽은 ‘유동 인구가 많은 번화가’ 위주로 정보를 수집해왔습니다.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의 정보가 더 쓸모가 많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예상 못한 지역으로 넓히다 보니 생각이 확장됩니다. 다양한 지역, 장소의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면, 이동약자가 아닌 사람이 당연하게 누리는 다양한 삶의 기쁨을 모두가 함께 느낄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기술이 너희를 불평등하게 하리라?

LAB2050 AICE 포럼의 마지막 발표

어제 정책연구소 LAB2050에서 주최한 ‘AICE 포럼’에서 SCC 공동대표로 발표했습니다. ‘AI와 시민사회의 만남’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행사였습니다. AI 기술의 발전이 사회에 미칠 영향, NGO 단체들의 AI 활용 방안 등을 논하는 자리였습니다. SCC도 계단정복지도에 AI 기술을 적용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어서 그것을 소개하러 갔습니다.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눌 줄 알았는데 ‘기술 발전이 불평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관한 대화를 많이 나누는 자리더라고요. 많은 분이 기술 발전이 어려운 사람을 더 어렵게, 부유한 사람을 더 부유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셨습니다. 저도 기본적으로 같은 생각과 걱정을 갖고 있습니다. 기술 발전이 사회를 더 낫게 만들도록 발버둥 쳐야 합니다.

좌절하고만 있으면 안 되잖아요. 일단은 기술로 불평등과 차별을 줄여나가는 일상적 실천을 하면서 고민하는 것이 낫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선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대안을 찾아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우선 할 수 있는 일로 여러분께 ‘이번 주말 계단 정복 활동 참가’를 추천합니다!


토요일은 성남에서, 일요일은 관악에서 정복 활동하고 있을

여러분의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