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끝나지 않는구나!

오늘 원래 계단뿌셔클럽(SCC)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최근 SCC에 큰 사건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침에 예상하지 못한 뉴스를 접하고 주제를 바꾸었습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되고 있고, 얼마 뒤 개봉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상황 설명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이 단체는 ‘박원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유튜브에 예고편을 공개했는데요. 소개 글에 보면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다른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기획의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작, 개봉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했고 2억 원의 후원금을 모았다고 합니다.

영화의 연출자는 한 유튜브 채널에 나와 “변호사 시절이었던 1993년 우 조교 사건 변론을 맡아 한국 페미니즘 시작 지점에 나섰던 박원순이라는 분을 이렇게 퇴장하게 둘 순 없다, 박원순의 명예를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인터뷰했습니다. 이 단체는 성폭력이 없었고, 고인이 무고하게 책임을 추궁당했으니 ‘진실’을 밝혀 명예 회복을 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이들은 이 사건에 대해 충분한 조사, 검토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피해자 및 여러 참고인 진술, 다양한 자료 등을 종합해 성희롱이 있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결정에 행정소송이 제기되면서 법원이 또 한 번 검토해 인권위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충분한 검토를 거쳐 판단이 이뤄진 성폭력 사건입니다.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하는 건 피해자와 가족, 친구들을 고통스럽게 할 뿐 공적 의미가 없습니다.

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시점은 2020년 7월입니다. 당시 저는 공신력 있는 기관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 상황이 정리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2021년 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성희롱이 있었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이후로도 의심과 문제제기, 2차 가해가 반복됐습니다.

계기는 다양했습니다. 고인의 유족이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에 행정소송을 제기했을 때, 행정소송을 대리한 변호인이 피해자가 제출한 증거를 부분만 발췌해 유포했을 때, 피해자의 주장을 의심하는 내용의 책이 출간됐을 때, 고인의 묘를 이장했을 때, 다양한 계기로 이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고 피해 사실을 의심하는 이야기가 공론화됐습니다. 이번에는 영화입니다.

이럴 때마다 실망감과 좌절감이 밀려옵니다. 어렵게 돌을 정상까지 밀어 올리고 ‘이제 끝났구나’하고 있다가 다시 굴러떨어지는 기분입니다. 피해자의 동료였을 뿐인 저조차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데, 피해자 본인과 곁에 있는 가족들은 정말 큰 고통을 받고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해왔는데, 이제는 그렇게 말하기도 민망할 지경입니다.

마음가짐 전환

‘빨리 다 끝났으면’하는 생각이 여전히 듭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더 오래 걸리고 어렵다는 걸 이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 끝났으면 좋겠다, 왜 안 끝날까’ 하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문제가 생겼을 때 더 실망스럽고 괴로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괴로움이 크면 지치기 쉽고, 지치면 필요한 일을 해야 할 때 에너지가 부족할까 걱정이 되거든요.

연대의 마음을 ‘그들’보다 더 오래 유지하며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끈기를 가지려면, 가능한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에너지를 잘 비축해 두어야 합니다. 그건 비단 저만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각, 마음고생하고 계실 김잔디 씨와 가족분들, 어려움을 겪고 계신 수많은 분께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시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에게 연대의 마음을 보태고 싶으시다면, 이 글을 한 번 읽어주세요. 이 글은 지난해 10월 피해자 지원단체에서 낸 입장문입니다. 이 입장문에는 피해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어떤 점에서 문제가 있는지 잘 쓰여있습니다.

날씨 좋은 봄날,
무사히 하루 보내고 계시기를 바라는
당신의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