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호님, 큰 일 난 거 같은데… 빨리 전화 좀 주실래요?

계단뿌셔클럽 (29)

대호님, 큰 일 난 거 같은데… 빨리 전화 좀 주실래요?

5월 1일 노동절 오후, 저는 태국 음식점에서 친구들과 이른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팟타이와 그린 커리를 아주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요. 카톡 알림이 빠르게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이내 전화가 왔습니다. 받아보니 박수빈 SCC 공동대표님이 하는 말씀, "대호님, 우리 계단정복지도 데이터 거의 다 날린 것 같아요…."

머리 피가 다 빠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수습 과정 (1): 대응 계획 수립까지

개발자 J는 실력있고 친절한 사람입니다. 프로젝트 시작부터 함께한 친구이기도 합니다. 모처럼 쉬는 노동절에 열심히 계단정복지도 개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요. 갑자기 부하가 걸려 서버가 멈추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서버를 재시작했는데 데이터가 초기화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자동 복구 기능'을 사용하는데요. 안타깝게 SCC가 쓰는 저렴한 요금제에는 그 기능이 없었습니다.

좌절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우선 정확한 상황 파악부터 해야했습니다. 수빈님의 주도로 정확한 데이터 유실 현황과 서버 운영 업체(AWS)를 통한 복구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결과는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불행'은 업체를 통한 복구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고요. '다행'은 대부분의 데이터가 유실됐지만 SCC 멤버들이 촬영한 '계단 사진'은 전부 남아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진을 일일히 관찰해 복구할 수 있는 곳들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상황을 간략히 정리해 내부 구성원들께 공유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공동대표 수빈님과 함께 대응 방안 초안을 짰습니다. 대응의 초점은 (1) 사과와 상황 공유 (2) 데이터 복구하기입니다. 가능한 자세하게, 그러나 비전문가도 이해할 수 있는 설명문과 저희 잘못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사과하는 사과문을 썼습니다. 재발방지책도 포함했습니다. 단계별 복구 계획도 작성했습니다.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작업부터, 현장에 다시 찾아가는 작업 순으로 계획했습니다.

수습 과정 (2): 내부 논의를 통한 계획 수정

SCC 멤버들의 위로와 응원의 말씀들

계획 초안을 공유하고 문제점을 검토하는 팀 전체 회의를 열었습니다. SCC에는 제품팀과 커뮤니티팀이 있습니다. 제품팀은 계단정복지도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역할, 커뮤니티팀은 현장 정복 활동을 운영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긴급하게 잡은 회의였는데, 제품팀, 커뮤니티팀 구성원 여러분이 오셔서 함께 대응 방안의 적절성을 검토했습니다.

대응 방안 초안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정복자 명단 유실'입니다. 잃어버린 계단 정보는 다시 현장에 가서 찍어 올리면 되지만, 지금까지 참여했던 분들의 이름은 어떤 방법으로도 복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공동대표들이 너무 죄송한 마음에 낸 의견은 "사비를 털어서 음료 기프티콘이라도 보내드리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멤버들을 직접 만나는 커뮤니티팀 구성원 대부분이 반대했습니다. 마음은 알겠지만, 현물로 보상을 하게 되면 부정적 인상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정복 활동에 참여한 건 경제적 유인 때문이 아닌데 '돈으로 보상할 수 없는 것을 돈으로 보상'받는 느낌이 들 것 같다는 이유였습니다. 덕분에 죄송한 마음을 더 잘 전하는 데에 집중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주 중요한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습 과정 (3): 사과와 반성

5월 4일 오전, 상황 설명과 사과, 복구 계획, 재발 방지책을 담은 사과문을 문자로 발송했습니다. 그동안 SCC에 참여해주셨던 모든 분들, 펀딩에 참여하신 후원자 분들께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내용을 설명하는 이미지와 함께 SCC 외부 소통 채널인 인스타그램에 게시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이 응원과 위로의 말씀을 보내주셨습니다. "힘 내라, 다시 모으면 된다, 초반에 이런 일이 생겨서 다행이다, 함께 복구하고 싶다"는 말씀들이었습니다. 고생해서 모은 데이터를 제품팀이 실수해서 잃어버린 명백한 과실입니다. 그런데 격려의 말씀을 보내주셔서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이런 훌륭한 분들의 노력을 다시는 물거품으로 만들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중에도 계단뿌셔클럽에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책임지고 복구 작업 잘 마무리하고,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보태주신 마음과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요!

사고를 경험하고 수습하면서 제가 깨달은 것들을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오늘은 여백이 부족하네요. 다음 주에 이어서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날이 더워지는데, 건강 유의하셔요!
다시는 데이터를 잃고 싶지 않은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