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당은 너무 도덕주의가 강하다
논평 (1)
김남국 국회의원 ‘코인 사태’가 큰 화제입니다. 국회 회의 중에 수차례 암호화폐 거래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또 내부자 정보를 활용해 큰 수익을 거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민주당 지도부는 ‘혁신 의원총회’를 소집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양이원영 국회의원의 다음 발언이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 우리 당은 너무 도덕주의가 강하다.”
황당했습니다. 저는 ‘진보 정치’가 엄격한 윤리기준을 포기하고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를 지지하는가?
제약회사에서 일하시는 박 선생님은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의 탈모약 공약’을 보고 화가 나셨다고 합니다. 탈모약에 보험을 적용하는 공약이 현실화되면 건강보험 재정에서 탈모약에 큰 돈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보험 적용 안 되는 비싼 약을 쓰는 중증 환자들은 지금보다 뒤로 밀립니다. 건강보험 재정이 빠듯해 생존에 필수적인 약도 아직 보험 적용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정부는 ‘어떤 약에 보험 적용을 하면 좋을까요?’하고 주기적으로 여론 조사를 해요. 그럼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감기약값이 조금 더 비싸지더라도 절실한 사람의 비싼 약 가격을 깎아주면 좋겠다’고 응답하거든요. 굉장히 희망적인 조사 결과잖아요. 그런데 정치권이 나서서 탈모약에 적용해준다고 해버리면 어떡해요.”
저는 더불어민주당이 박 선생님이나 ‘감기약 비싸져도 희귀병 환자 치료비를 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잘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게는 당장 이득이 되지 않거나 약간 손해가 되더라도 곤경에 처한 이웃의 삶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사람들, 그렇게 세상이 변화해야 결과적으로 나와 내 가족의 삶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 말입니다.
위선과 부패는 선의를 고갈시킨다
어제는 오랜만에 대학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한 친구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내년에 총선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을 계기로 오랜만에 ’조국 사태’에 관해 대화했는데요. 친구 N이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나는 조국 사태를 보면서 그 전이랑 좀 생각이 달라졌어. 내가 대단히 도덕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규칙을 잘 지키고 사는게 옳다고 생각을 했었거든. 근데 그 사건을 겪고 나니까 내가 되게 바보 같은 생각을 했구나 싶은거야. 겉으로 문제 안 되게 하면서 뒤로는 다들 자기 이득을 최대한 취하면서 사는 세상이었구나. 내가 순진했구나”
진보적인 정책은 그 정책의 이용자만의 지지로는 공감대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그보다 폭넓은 지지를 얻어내려면 ‘이득이 된다’고도 주장해야 하지만, 시민들의 선의에도 호소해야 합니다. 그런데 위선과 부패는 사람들을 실망시켜 선의를 고갈시킵니다. 사람들의 선의는 무한히 샘솟는 우물이 아닙니다. 우물이 마르면 정책 추진의 동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도덕성을 내려놓으면 해결될까요? ‘저는 열심히 사익추구 하는 사람인데, 여러분은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우리 정책에 동의해주시겠어요?’라는 제안은 지지를 받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에게 윤리를 요구할 명분
저는 윤석열 정부가 국정운영을 더 잘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도 우리 당이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에서 가장 문제 삼고 싶은 점은 곤경에 처한 국민을 만나지 않는 무책임입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도, 전세 사기 피해자들도, 심지어 전 정부가 무시했다며 책임지겠다고 했던 코로나19 백신 피해자들도 제대로 만나지 않습니다.
만나야 당사자들은 조금이라도 한을 풀고, 제대로 해결하자는 신호를 정부 안팎에 보내 재발 방지를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선택은 무책임한 거리두기입니다. 피해자들을 만나고 나서 눈높이에 맞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면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위험을 피하고 잊혀지는 전략을 사용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권유지에 이득이지만 무책임합니다.
야당은 이 무책임을 비판하고, 때로는 회유하면서 정부가 위기에 처한 국민들을 만나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 말에 힘이 실리려면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손해가 되지만 공동체에 필요한 일을 우리는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만 윤리를 요구한다면 정부를 압박할 수 없습니다.
현재 무소속 국회의원은 9명입니다. 이중 김진표 국회의장을 제외한 8명 모두 민주당 소속이었습니다. 대부분 문제를 일으켜 제명되거나 탈당했습니다. ‘윤리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기준을 맞출 수 있는 인재가 내부에 부족할 때, 바꿔야할 건 기준이 아닙니다. 우리 당을 지지하는 분들을 제대로 대변하고, 정부가 더 올바른 정치를 하도록 견제하려면 도덕성을 포기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바꿔야 할 건 기준을 못 맞추는 내부자들입니다.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