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토론회는 선을 넘어버렸는데?
7월 5일, 오전 6시로 맞춰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습니다. 바짝 긴장한 탓입니다. 지난 두 달 동안 준비한 국회 토론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행사장에 설치할 현수막, 배너 등의 준비물을 바리바리 챙겨 국회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토론회 <권력형 성범죄: 안전한 민주당으로 가는 길>로 ‘선을 넘어버린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머리보다 가슴이 앞선 기획
어느 날,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를 의심하는 다큐멘터리 ‘첫 변론’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짜증과 좌절이 밀려와 머리가 빠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때, 권력형 성범죄 문제에 진심인 동료 박 선생님이 피해자의 편에서 무언가 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뜻 맞는 분들과 ‘토론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모든 것의 발단입니다.
토론회의 목표는 피해자의 일상 회복과 성폭력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입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관철해야 합니다. 곰곰히 생각해보 니 당 차원에서 ‘대책을 세우겠다’고 입장은 냈지만 어떤 방법이 타당한지,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토론하는 자리는 거의 없었습니다. 토론회를 통해 제도개선안을 제시하기로 했습니다.
한 가지 목표가 더 있었습니다. 이 토론회를 정치권에서 일하는 직장인들께 널리 알리고 싶었습니다. 사명감을 갖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보좌진, 당직자들이 많습니다. 모두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동료들이, 정치인들이 있다는 것, 그래서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순탄하지 않은 준비 과정
토론회 기획은 수월했습니다. 피해자의 일상 회복, 권력형 성범죄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방안이 핵심입니다. 저,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님, 신용우 전 충남지사 수행비서님은 권력형 성범죄 사건을 간접적으로 경험했습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제도개선안을 발제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전문가 네 분이 발제에 대한 보충, 비판 의견을 주시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장소 섭외’였습니다. 저희는 토론회를 국회에서 열고 싶었습니다. 권력형 성범죄 문제가 공론화되어야 하는 본진이기 때문입니다.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려면 국회의원이 공동 주최를 해주시거나 장소를 빌려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 의원님께 요청청을 드렸지만, 다양한 이유로 성사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먹구름을 걷어내는 한 줄기 햇살처럼 공동주최자를 만났습니다. 대전 유성구의 이상민 의원님입니다. 크게 고민하지 않으시고 흔쾌히 동의해 주셨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실무적인 준비를 일사천리로 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큰 고민이 해결되자 포스터, 현수막, 자료집, 언론 대응 등 필요한 실무를 분담해 하나씩 차근차근 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제안서의 전달과 혁신위의 응답
제 발표 제목은 ‘서울시장 비서실 근무 경험에 기반한 권력형 성폭력 재방 방지책 제안’이었습니다. 유난히 시청, 도청 비서실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이유가 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인을 세 가지로 분석하고, 4개의 제도 개선안을 담았습니다. 아직도 당규에 남아있는 ‘피해호소인’ 표현을 삭제하고, 권력형 성폭력 사건 발생 시 지도부가 2차 가해를 제지할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 등을 말했습니다.
다른 발제도 아주 유익했습니다. 박지현 전 위원장님은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박완주 의원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면서 처리 체계가 부실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심지어 젠더폭력 신고센터 센터장은 계속 공석입니다. 이걸 내실화해야 한다는 이야기 등을 들려주셨습니다. 다른 발제자 신용우 전 충남지사 수행비서님은 피해자와 조력자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가해자 편에 섰던 사람들은 잘나가는 문제를 꼬집으셨습니다.
마지막에는 발제자와 토론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권력형 성범죄 재발 방지를 위한 제안서’를 발표했습니다. 지금 민주당은 당을 혁신하기 위해 혁신위원회를 꾸려 가동하고 있습니다. 혁신위에 제안서를 전달했고, 혁신위는 바로 그날 오후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열심히 고민하며 토론회를 준비한 보람을 느꼈습니다.
토론자로 와주셨던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님은 “권력형 성범죄에 관해 논의하는 자리가 민주당 주최로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당에서 이 문제에 대해 말하는 건 ‘선 넘는 것’으로 여겨진 것이 사실입니다. 공론화해서 대책을 논의하고 적용해 보고 분석해서 개선해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토론회 한 번으로 당장 많은 것이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끈기 있게 하나씩 바꿔나갈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혹시 끈기를 잃은 것 같아 보이면 따끔하게 한 말씀 해주세요. 권력형 성범죄를 막는 건 정말로 중요한 일이거든요.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