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가 해산하게 된 결정적 이유

그린벨트 프로젝트 (10)

그린벨트가 해산하게 된 결정적 이유

최근 그린벨트를 해산하기로 했습니다. 그린벨트는 2021년 12월 ‘2030 민주당 출마자 연대’로 시작한 모임인데요. 한때 150여 명의 출마자가 활발하게 활동했고, 40여 명의 당선자를 배출한 근사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잘 되는 것 같더니 왜 해산하게 됐을까요?

짜릿했던 민주주의의 순간

민주적인 목표 결정 절차

그린벨트 V1(Version 1)의 목표는 ‘우리 서로 격려하면서 지방선거를 완주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해산하기로 처음부터 정했습니다. 그런데 지방선거가 끝나고 해산하려고 보니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이왕 모였으니 무언가 더 해보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린벨트는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두 번째 그린벨트(V2)로 거듭나기로 했습니다.

아주 민주적인 방식으로 목표를 정해보기로 했습니다. 새로 모인 그린벨트 V2의 멤버는 약 70명이었습니다. 각자 ‘우리가 해결했으면 하는 문제는 무엇인지’ 써서 내도록 했습니다. 비슷한 의견끼리 묶어 5개의 모둠을 만들었습니다. 각 모둠은 여러 차례의 토론을 거쳐 활동기획안을 만들었습니다. 활동기획안에는 우리가 해결하려는 문제와 해결 방안이 담겼습니다.

총회를 열고  5개의 기획안을 안건에 부쳐 토론했습니다. 멤버들은 우려스러운 점을 적극적으로 지적했고, 기획서를 만든 사람들은 열심히 방어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와 참고 사례들이 수집됐습니다. 그야말로 생산적 토론, 짜릿했습니다. 투표를 통해 최종 결정이 내려진 순간에는 정말이지 민주주의가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민주주의 만세!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순간이 그린벨트 V2의 절정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그린벨트 졸업식의 마지막 슬라이드

70여 명이 모두 참여해 민주적으로 결정한 목표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론장 만들고 확산하기’였습니다. 민주당은 전국을 253개로 나누어 253개 지역위원회를 두고 있는데요. 지역위원회와 협업해 전국 곳곳에서 공론장을 여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목표를 이루려면 (1) 좋은 공론장 프로그램과 (2) 지역위 설득 영업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진도가 잘 안 나갔습니다. 목표 결정 이전보다 멤버들의 회의 참여율은 저조해졌습니다. 공론장 프로그램을 만드는 TF에 참여하려는 사람도 적었습니다. 어렵게 TF를 꾸렸지만 기존에 열심히 하던 멤버만 몇 들어왔을 뿐입니다. 공론장을 통해 문제를 다 같이 결정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고 보니 여전히 초기 멤버들끼리만만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렵사리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상품 소개서를 만들어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다 난색을 보였습니다.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여력이 없으니 내년 총선 이후에 추진해 보자는 완곡한 거절이었습니다. ‘당원들이 다른 생각 가진 사람과 만나 대화하는 공론장’을 경험하도록 할 유인이 지역위원장들에게는 없었습니다. 잘되지 않으니 참여는 점점 더 저조해졌습니다.

복기

즐거웠던 처음이자 마지막 그린벨트 공론장

마음씨 좋은 우리 동네 지역위원장님, 김병관 위원장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겨우 공론장을 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계획대로 그린벨트를 운영하긴 어려워졌습니다. 게다가 여러 사람이 상처 입는 사건이 생기면서 활동하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논의 끝에 해산을 결정했습니다. 끝내더라도 마무리를 잘 지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졸업식을 열고 회고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린벨트 V2는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민주적 결정이 좋은 결과를 보장할 거라는 착각’이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적 절차를 성실히 운영해 함께 목표와 계획을 정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어 완성도 높은 결론이 도출될 거로 생각했습니다. 또 구성원들이 자신이 참여한 결정에 대해 책임감을 갖게 되어 운영 과정에 적극 참여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공론장이 필요하다’는 당위에 다들 동의했을 뿐, ‘공론장 만들기에 열심히 참여하고 싶다’는 건 아니었습니다. 리더십의 역할은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용하되, 스스로가 책임질 수 있는 계획을 짜서 구성원들을 다시 설득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의사결정에 참여한다고 해서 모두가 결정에 책임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조직을 책임질 사람들이 더 깊이, 고민, 결정해야 합니다.


오늘은 따끔했던 점을 소개했지만요. 저의 첫 ‘정당 스타트업 그린벨트’를 하면서 배우고 얻은 것이 참 많습니다. 다음에는 그린벨트를 통해 배운 것을 소개해볼게요!

그린벨트에서 함께 했던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여러분의 동료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