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 Victory (위대한 승리)
태국 행동전진당 활동가 Tim을 만난 이야기
창당한 지 3년 된 스타트업 정당이 있습니다. 이 정당은 기라성 같은 강자들을 제치고 최근 1당을 차지했습니다. 얼마 전 만난 팀(Tim Apichaya)이 소속된 태국의 행동전진당 이야기입니다. 지난 5월 태국 총선 결과를 접한 뒤 정말 궁금했습니다. 80년생 당대표가 이끄는 신생 정당은 어떻게 원내 1당이 되는 파란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요?
팀과의 브런치
궁금하긴 한데 태국 정치 소식을 접할 방법이 별로 없더라고요. 답답하던 차에 친구가 흥미로운 초대장을 보내줬습니다. 행동전진당 소속 하원의원의 보좌진으로 일하는 사람이 온다는 겁니다. 외교안보 전문 뉴스레터 델타월딩&지식 커뮤니티 시에라소사이어티 주최의 대화 모임이었습니다. 토요일 이른 아침이었지만 냉큼 신청했습니다. 언론 보도만으로는 알 수 없는 행동전진당의 이야기를 꼭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팀을 만났을 때 사실 조금 놀랐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젊었기 때문입니다. 팀은 하원의원의 보좌진이고, 정당 활동가, 민주화 운동가이면서 영어 강사이고, 국제관계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입니다. 청소년 시절 군부 쿠데타를 목격한 뒤 사회 운동에 참여하게 됐다고 합니다. 지난 총선에서는 지금 보좌하는 하원의원의 당선을 위해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고, 당선시켰습니다.
팀이 가장 관심 있는 문제는 ‘교육 격차’라고 합니다. 태국은 사립 학교, 공립 학교 간의 격차가 크다고 합니다. 그것이 곧 기회의 격차로 이어집니다. 공립 학교에서도 양질의 교육을 받아 다양한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팀의 이상입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석사까지 공부도 하고, 기업에서도 일해보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은 뒤 선거에 출마하고 싶다고 합니다.
Grand Victory (위대한 승리)
명랑함이 넘실거리는 팀의 꿈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자연스럽게 ‘당’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행동전진당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자, 분위기가 어두워졌습니다. 보도로 접한 것과 달리 행동전진당은 큰 위기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1당을 차지했지만 총리직 획득에 실패했고, 화제의 인물이 된 당대표 피타 림짜릇란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직무 정지 당했습니다.
8년 전 태국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때 이후 군부는 국가 권력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상원의원 250명을 군부가 임명할 수 있고, 헌법재판소 등의 주요 기관도 군부가 좌지우지합니다. 행동전진당의 전신인 신미래당도 헌법재판소가 해산시켰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태국 국민들은 행동전진당을 선택했지만, 여전히 군부의 힘은 막강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제가 다 힘이 빠졌습니다. 정말 어렵게 원내 1당을 차지했는데, 탄압은 더 거세졌고 막기도 어렵습니다. 동력이 약해질 것 같은데 괜찮냐고 참가자 한 분이 물었습니다. 질문을 받은 팀의 표정이 결연해졌습니다.
“당이 탄압받기 이전에도 수많은 친구들이 납치되거나 체포됐어요. 그런 일들이 생기면 사실 좌절감이 들어요. 터널에서 빛을 발견한 줄 알았는데 다시 갇혀버린 느낌이에요. 그러나 우리는 꽃입니다. 밟힐 수록 더 크게 피어납니다. 당이 해산되면 당을 다시 만들고, 피타가 잡혀가면 새로운 리더를 세울 거예요. 우리는 반드시 위대한 승리(Grand Victory)를 이뤄낼 것입니다.”
명백한 부조리와 절실함
팀을 만나기 전 막연한 가설이 하나 있었습니다. 태국에서 전진당의 승리가 가능한 이유는 ‘인구구조’ 때문일 거라고요. 젊은 인구들이 많은 나라이니 역동적인 정치 운동이 가능하고 유권자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거 아닐까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아이폰과 인스타그램을 즐겨 쓰는 20대 초반 아시아 여성인 팀을 처음 보았을 때, 제 생각이 맞아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대화를 해보고 잘못 짚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위대한 승리를 말하는 팀의 모습에서 80년 광주를 떠올렸습니다. 군부의 민간인 학살에 맞서 도청을 지켰던 대학생들의 표정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행동전진당의 파란은 무능한 군부가 선량한 동료들을 영장 없이 잡아가는 명백한 부조리와 그 부조리를 깨뜨리고 싶은 절실함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저는 주류 정치 세력이 교체되는 장면을 늘 상상합니다. 젊은 세대의 암담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세력과 운동이 필요합니다. ‘인기 있는 혁신 세력, 운동이 등장하면 좋겠다, 그런 일을 하고 싶다, 왜 안 생길까, 왜 안 나타날까’는 많이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데 아름답고 커다란 꽃을 피워 내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해서는 많이 고민해 보지 않았다는 걸, 팀과의 대화에서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위대한 승리’는 무엇일까요?
이대호 드림.
*이 모임은 델타월딩&시에라소사이어티 멤버 분들의 기획과 초대로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뜻 깊은 자리를 기획하시고 현장에서 통역까지 담당해주신 이한규 원정대원님, 한정된 초대장을 보내주신 이병준 원정대원님을 비롯해 델타월딩&시에라 소사이어티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