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이란 무엇인가
공공기관 직원 김 선생님은 일 때문에 알게 된 분입니다. 몇 달 전 계단뿌셔클럽에 협업을 제안하셨고, 최근 협업이 잘 마무리됐습니다. 김 선생님과 함께 일하면서 ‘진정성'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김 선생님이 업무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진정성'을 많이 느꼈거든요.
직장인 김 선생님의 고뇌
김 선생님은 제주의 한 공공기관 직원입니다. 이 센터의 주제는 자원봉사입니다. 김 선생님은 다양한 봉사활동을 기획하는 일을 하시는데요. 작년에는 시내 식당, 카페의 접근성을 조사하는 프로젝트를 하셨다고 합니다. 봉사자를 모집해 수백 군데 장소의 접근성을 조사했습니다. 결과를 책자로 만들어 배포하고, 웹사이트에도 게시해 두었습니다.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라면서요.
근데 좀 회의감이 드셨다고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이 그 책자를 실제 활용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보가 필요한 관광객이 센터를 방문해 책자를 가져갈 것 같지도, 접속량이 많지 않은 센터 웹사이트에 방문할 것 같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참여자의 만족도도 높았고, 참신한 기획이란 평가도 있었지만 김 선생님은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올해 사업을 기획하는 김 선생님에게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1) 칭찬받은 작년 그대로 하는 것 (2) 아예 다른 기획을 해보는 것 (3) 단점을 보완할 대안을 찾는 것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이 첫 번째 선택을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직장인에겐 다른 할 일도 많으니까요. 두 번째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김 선생님의 선택은 세 번째였습니다.
“제주에서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김 선생님의 진정성이 계단뿌셔클럽을 제주로 이끌었습니다. 세 달 전쯤 인스타그램 DM으로 협업 제안을 받았습니다. 계뿌클 입장에서 아주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수도권 아닌 곳, 특히 인기 관광지에서 활동해 보고 싶었거든요. 그중 제주는 1순위였는데, 단독으로 시작하기에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먼저 연락을 주시다니 신청도 안 한 이벤트에 당첨된 것 같았습니다.
과정이 아주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제주의 공공기관에서 보기에 계단뿌셔클럽은 아쉬운 점이 좀 있습니다. 우선 제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팀이 아니고요. 유명하고, 신뢰할 만한 역사와 이력이 있는 팀도 아닙니다. 디지털 기술과 커뮤니티 활동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도 의사결정자들이 보기에는 낯설 수 있습니다. 한동안 연락이 없으시기에 안 됐나보다 생각도 했었는데요.
지난 주말 계단뿌셔클럽은 제주시 동문시장 주변에서 클럽 활동을 두 번 개최했습니다. 두 시간 활동에 한 시간 티타임을 곁들인 시간이었습니다. 사십 명에 달하는 사람이 모였고, 어린이, 청소년들도 많았습니다. 김 선생님의 동료, 상사들도 오셔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가셨습니다. 그중 한 분은 “김 선생님이 이 행사 하려고 노력 참 많이 했다"고 제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보통 ‘자기 일'이랑 ‘회사 일'이랑 다르게 할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회사 일은 내 일이 아니니 ‘적당히 진정성 갖지 않고' 하는 경우가 많고, 자기 사업은 이익도 손해도 자기 몫이니 ‘열심히 진정성 있게'하는 경우가 많다고요.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계단뿌셔클럽은 제게 ‘자기 일'에 해당하는데요. 늘 본질에 천착하며 진정성을 다하는가, 부끄럽게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문제 해결하긴 어려운데,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기'가 가능할 때가 있습니다. 그럭저럭 구색 맞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경우 말입니다. 놀랍게도 자기 일을 할 때도 그런 유혹을 느낍니다. 자신을 속이고 편해지고 싶은 유혹입니다. 김 선생님의 경우로 예를 들면, 접근성 정보 책자를 만들어 연관된 단체에 배포하면 보고서를 잘 꾸밀 수 있습니다. 많이 쓰이지 않겠지만요.
본질에 닿지는 못하지만, 그럴싸하게 보일 수 있는 쉬운 길이 자주 우리를 유혹합니다. ‘본질에 집중한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잖아’라고 속삭이면서요. 그 유혹을 떨쳐내는 마음이 진정성입니다. 진정성을 발휘할 기회는 장대한 서사 속 비범한 인물에게만 주어지지 않습니다. 평범한 우리의 일상, 업무의 과정 속에 진정성을 발휘할 기회가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기회를 가능한 많이 잡아봐야겠어요!
<이대호의 정치도전기> 열심히 읽는 친구들을 대상으로 작은 감사 파티를 열어보려고 합니다. 편지에 다 못 담은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것도 먹고, 고민도 나누는 소소한 파티입니다. 대상이 되는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초대장을 곧 보내드리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여러분의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