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km 휠체어 출장기

계단뿌셔클럽 (41)

800km 휠체어 출장기

몇 달 전, 경남 창원에 본사를 둔 기업으로부터 놀라운 의뢰를 받았습니다. 전국 10개 사업장에서 계단뿌셔클럽 소개 강연과 클럽 활동을 열어달라는 것입니다. 꿈만 같았습니다.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의 전국 출장이라니! 그러나 휠체어 전국 투어의 어려움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휠체어 출장의 장점

울산에 도착한 계단뿌셔클럽

출장자는 저와 수빈님, 첫 주차 코스는 성남-울산-창원-성남이었습니다. 1박 2일 간 3개 공장에서 강연과 클럽 활동하는 일정입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운전을 못 하고 수빈님 혼자 도합 800km 운전하는 건 너무 힘듭니다. 다행히 울산과 창원의 3개 사업장은 기차역에서 가깝습니다. 큰 이동은 KTX로, 경상도 내 이동은 장애인콜택시를 타기로 했습니다.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의 출장’에는 장점이 있습니다. 각종 할인제도입니다. 정확한 할인율은 모르겠지만, KTX  요금은 절반 수준입니다. 동행인까지 할인되고 특실로 배정됩니다. 장애인콜택시도 일반택시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울산에서 창원으로 갈 방법이 마땅찮아 혹시나 하고 알아봤는데요. 시외 이동도 가능했습니다. 요금도 일반 택시의 1/5 수준입니다.

가기 전에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수빈님과 수도권 이곳저곳 함께 다녀봤지만, 1박 2일 몇백 킬로미터를 이동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차에 일단 탑승하면 편안했고, 장애인콜택시의 이동 범위도 넓었습니다. 시외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대중교통 지방 출장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에겐 성공 경험입니다.

문제점 1: 슈뢰딩거의 장애인콜택시

울산의 장콜 부르미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양자역학에서 쓰는 비유인데요. 저도 양자역학은 잘 모르지만, 고양이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말로 양자역학을 설명할 때 쓰는 것 같습니다. 장애인콜택시(이하 장콜)가 딱 그렇습니다. 콜택시는 호출하면 탈 수 있는 택시인데요. 장콜은 탈 수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마치 양자역학의 세계에 있는듯합니다.

출장 중 장콜로 이동할 일이 다섯 번 있었습니다. 그중 세 번은 장콜을 타지 못했습니다. 미리 호출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최소 1시간 30분 전부터 대비했는데요. 그래도 타지 못했습니다. 빈 차가 없어 배차가 안 된 겁니다. 회사와 약속한 시각이 있기 때문에 늦으면 안 됩니다. 일반 승용차 택시를 호출한 뒤 휠체어를 뒷좌석에 겨우겨우 싣고 몸을 구겨서 탔습니다.

일반 택시를 타는 것도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합니다. 동행인이 있고, 동행인이 이동약자를 안아서 차량에 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동행인이 건장하고, 휠체어 사용자가 가벼우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라면 어렵습니다. 창원의 택시 기사님들은 모두 친절하셨지만, 기사님에 따라 휠체어 싣는 걸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고객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습니다.

문제점 2: 마산만큼 먼 성남

차는 결국 11시 넘어서 도착했다고 한다

마산역에서 기차를 탄 시각은 오후 6시 무렵, 서울역 도착 예정 시간은 9시였습니다. 서울역에서 저와 수빈님이 사는 성남까지는 또 장콜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수빈님이 8시 조금 못 되어 장콜을 호출했습니다. 장콜이 서울역에 도착한 시각은 11시, 제가 집에 도착한 시간은 밤 12시 20분입니다. 마산에서 서울역에 온 시간만큼 서울역에서 성남까지 걸린 셈입니다.

당장 집에 가서 눕고 싶은데, 서울역에서 두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경험은 솔직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시간이 괴로워서라기보다는 경험해 보니 황당할 정도로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카페는 9시, 10시면 다 문을 닫습니다. 다행히 맥도날드에 자리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없었다면 냉기 가득한 대합실에서 11시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생각할수록 황당해 정부의 문제 인식과 대안을 찾아봤습니다. 국토부가 작년에 관련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서울 기준 622대의 장콜을 725대까지 늘리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한 목표이자 계획입니다. 문제 정의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차량 수'가 아닌 ‘대기 시간'입니다. 목감기 치료의 성과 목표가 ‘투약량'이 아니라 ‘기침 횟수’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쉽게도 보고서 어디에도 대기시간 통계는 없습니다.


계단뿌셔클럽의 미션은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의 막힘없는 이동'입니다. 쒸익쒸익… 갈 길이 머네. 쒸익쒸익…!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