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음은 미련일까?

계단뿌셔클럽 (42)

이 마음은 미련일까?

겨울은 냉정한 평가의 계절입니다. 계단뿌셔클럽도 올해 사업을 비판적으로 돌아보고 내년 계획을 궁리합니다. 정신없이 치러낸 사업과 활동을 숫자로 변환해 놓고 보니, 답하기 어려운 물음이 찾아왔습니다. ‘클럽 활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진짜로 효율적 전략일까요?

이대로는 문제해결 43년 걸린다

최근 입주한 마루360에 붙어있는 글귀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클럽 활동으로 어느 세월에 문제를 해결하지?’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이 계단정복지도 앱을 잘 쓰려면 네이버 지도처럼 돼야 합니다. 찾는 정보 대부분 들어있어야 합니다. 수도권에 있는 식당, 카페 등 편의시설의 수는 43만 개쯤 됩니다. 계뿌클이 올 한 해 수집한 정보는 10,000개 정도입니다. 지금 방식이라면 43년이 걸립니다.

43년 걸리는 방식으로는 이 문제를 절대 풀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중간에 멤버들이 지쳐 떠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많은 멤버들이 “이렇게 모은 정보를 이동약자분들이 얼마나 쓰고 있느냐"고 묻습니다. 쓸만한 앱이 되려면 정보를 많이 모아야 한다,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43년이라면요? 저라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계단뿌셔클럽이 클럽 활동을 하는 이유는 ‘문제해결에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클럽, 커뮤니티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의 막힘없는 이동'이라는 비전을 달성하는 데에 더 효과적인 전략이 있다면 과감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아무리 클럽 활동이 보기에 아름답고, 우리가 클럽 활동에서 기쁨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옥신각신

경남, 경북, 충북, 경기를 넘나드는 전국투어

최근 3주 동안 전국 출장을 다녔습니다. 한 기업의 의뢰로 10개 사업장을 다니며 클럽 활동을 열었습니다. 창원, 울산, 마산, 밀양, 창녕, 대구, 서산을 거쳐 마지막 출장지는 안양이었습니다. 지난주 목요일 동료 수빈님과 함께 안양으로 가는 길에도 회의적인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클럽 활동이 정말 최선인가?’하고요. 말문이 막히고 답이 나오지 않은 채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계뿌클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스무 분 넘게 모이셨습니다. 실내에서 1시간가량 준비한 강연을 듣고 90분간 평촌역 주변 장소를 정복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날 아침 기온이 확 떨어졌습니다. 낮인데도 너무 추웠습니다. 실내 프로그램으로 전환할지 잠깐 고민했지만, 10회차 중 대망의 마지막 클럽 활동이라 핫팩을 쥐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직원분들이 클럽 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저와 수빈님은 ‘클럽 꼭 필요한가'에 관해 치열하게 논쟁했습니다. ‘그래도 클럽 활동이 의미가 크지 않나’ 하는 생각, ‘그 생각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 미련’이 아닌가 하는 생각 사이에서 수빈님과 저는 초조한 메트로놈처럼 흔들리며 옥신각신하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시간이 흘러 어느새 사람들이 집결 장소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깨달음

문제의 빙산

클럽 활동을 끝내기 전 항상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소감들을 들려주셨습니다. ‘이 동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계단 이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생각보다 재밌었어요', ‘아버지가 몇 년 전부터 휠체어를 쓰시게 됐는데, 계뿌클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앱을 좀만 개선하면 좋겠어요’, ‘이동약자가 갈 수 있는 곳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강렬한 태양이 기지개를 켜 한 떼의 먹구름을 순식간에 몰아내는 느낌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소감이었을 뿐입니다.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동안 클럽 활동에 대한 번뇌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클럽 활동은 계단뿌셔클럽의 근본이며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신기한 점은 수빈님도 그때 비슷한 생각과 감정이 들었다고 합니다.

계단 문제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큰돈을 구해서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정보를 모으면 계단 문제만은 도려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의 막힘없는 이동'을 위해서는 저상버스 문제, 장애인콜택시 문제, 보행로 문제 등 빙산 몸통도 깨야 합니다. 근본적 해결은 다수의 사람이 이 문제를 알고 해결하고 싶어 할 때 가능합니다. 사람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습니다. 클럽 활동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계단뿌셔클럽이 찾을 것은 클럽 활동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클럽 활동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계뿌클이 내년에는 생산성을 더 향상시켜 효율화할 수 있을지 한 번 지켜봐주세요!

계단계의 헨리포드가 될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