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보수 정치인이 들려준 집권당의 실체

대만 총통 선거 관전기 (1/3)

대만 보수 정치인이 들려준 집권당의 실체

대만 총통 선거를 보고 돌아왔습니다. 남의 나라 선거는 왜 보러 가느냐고요? 21세기 정치인에게 ‘미·중 경쟁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은 필수과목입니다. 미·중 갈등의 최전선인 대만과 대만의 총통 선거가 한국에 미칠 영향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국제 정세의 변화를 면밀히 이해해야 리더로서 우리 공동체를 지키는 결정을 정확히 내릴 수 있습니다.

기대 이상으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우육면 먹다 선거 유세나 구경하고 올 줄 알았는데요. 여러 친구의 도움 덕에 여당과 야당의 정치인, 연구자, 언론인, 평범한 젊은 시민 등 여러 사람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거유세도 가까이서 볼 수 있었고요. 그중 특히 유익했던 경험과 생각을 3부작으로 소개합니다.

*지난주 편지에 소개한다고 말씀드렸던 <이대호의 정치도전기> 개편 계획은 시의성 높은 대만 총통 선거 관전기 이후에 연재하겠습니다.

대만 총통 선거의 기본 구도

출처: 동아일보

대만에는 한국처럼 거대 양당이 있습니다. 민주진보당(민진당)과 중국국민당(국민당)입니다. 민진당은 더불어민주당과 비슷합니다. 독재와 싸운 민주화 운동 세력이 80년대에 창당했습니다. 국민당은 194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독재 집권한 보수 정당입니다. 96년 총통 직선제를 도입하기 전까지 대만을 통치한 세력입니다. 2000년 처음 민진당이 정권 교체에 성공했습니다.

이번 총통 선거에는 3명의 후보가 출마했습니다. 집권당인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 국민당의 허우유이 후보, 신생정당인 대만민중당(민중당)의 커원저 후보입니다. 각각 40.05%, 33.49%, 26.46%를 득표,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대만은 4년마다 대선을 치르는데 한 번 연임이 가능합니다. 8년을 재임한 차이잉원 정부의 부총통 라이칭더가 배턴을 넘겨받게 됐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해외 언론에서는 보통 민진당을 ‘반중', 국민당을 ‘친중', 민중당을 ‘중도’로 설명합니다. 그래서 ‘반중’ 라이칭더가 당선되어 대만과 중국 간 관계가 악화될 거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중국이 대만을 무력 침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요. 대만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민진당의 실체를 알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민진당의 실체

국민당 소속 장 웨이위안 타이베이 시의원 (Thanks to DS!)

‘의원님의 경쟁 정당인 민진당은 반중 성향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되면 전쟁 위험이 커지지 않을까요?’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서 시의원으로 일하는 젊은 국민당 정치인을 만났을 때, 그에게 한 질문입니다. 제가 예상했던 답은 ‘당연하죠! 민진당이 당선되면 위험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 국민당이 승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였습니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습니다.

“물밑에서는 민진당도 중국과 소통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국민당도 미국과 많은 대화를 합니다. 물론 두 당이 선거 국면에서 서로에게 자극적인 프레임을 씌웁니다. 20년 전에는 민진당이 통일, 독립과 같이 중국을 매우 자극할 수 있는 주장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두 당은 모두 이념적 의제보다 경제 성장을 중시하는, 입장 차이가 크지 않은 보수 정당입니다. 전쟁 가능성은 해외에서 보는 것처럼 높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만 국민의 명령 ‘현상 유지’

훠궈를 사주신 훌륭한 분들

대만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한국 연구자 선생님들과 훠궈를 먹었는데요. 그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전쟁 위험이 높아질 수도 있을 것 같냐'고 물었더니, 다들 “누가 되든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놀랐습니다. 저는 친중 후보가 되느냐, 반중 후보가 되느냐에 따라 크게 상황이 달라질 거라는 보도를 많이 읽고 갔거든요.

연구자 김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대만 국민의 80%가 ‘현상 유지'를 원합니다. 현상 유지란 지금처럼 대만이 사실상 독립된 상태를 유지하면서 중국과 무역도 하고, 교류도 하면서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독립을 추진하는 것도, 홍콩처럼 중국과 하나가 되는 것도 국민들이 원하지 않습니다.” 50%의 친중 국민, 50%의 반중 국민이 대립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겁니다.

당선되려면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두 당 모두 ‘현상 유지’를 추구합니다. 경쟁 과정에서 상대방을 무너뜨리기 위해 서로를 친중으로 반중으로 매도하고 공격하지만, 그것은 ‘말’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두 당의 길이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그들이 정치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정해져 있습니다. 국민의 명령, ‘최선을 다해 현상 유지’입니다.


친중 후보, 반중 후보, 중도 후보라는 구분이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복잡한 현실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해외에서 한국 대선을 보는 시각도 대북 관계를 중심으로 ‘친북 정당’, ‘반북 정당’으로 단순하겠구나 싶더라고요.

중요한 건 역시 가까이에서 살펴봐야 합니다. 2편에서는 ‘대만 민진당이 한국 민주당보다 아주 조금 나은 이유’를 소개하겠습니다.

짜이찌엔!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