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갈등 부추기는 대만 정치인

대만 총통 선거 관전기 (3/3)

세대갈등 부추기는 대만 정치인

대만 총통 선거의 당선자는 라이칭더 민진당 후보입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날, 유세장에 가장 많은 사람을 모은 후보는 라이칭더가 아니었습니다. 3등 후보 커원저였습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커원저를 응원하러 나온 사람 대부분이 20대, 30대 젊은이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궁금했습니다. 대만 젊은이들은 왜 59년 아저씨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을까요?

‘안철수 + 홍준표 = 커원저’

출처: 커원저 페이스북

커원저의 정치 경력은 아주 특이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대학교와 같은 국립대만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입니다. 대만대병원에서 응급의학센터장으로 일하던 커원저는 ‘사이다 지식인’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사회, 정치 현안에 대해 시원한 발언을 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 인기를 바탕으로 타이베이 시장으로  출마해 무소속 당선됩니다.

2018년에는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 다시 출마해 재선에 성공합니다. 2014년에는 민진당이 후보를 내지 않아 1:1 구도였는데요. 2018년에는 3자 구도에서 커원저가 간신히 승리를 거둡니다. 양당에 속하지 않은 후보가 이렇게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일은 대만에서도 유례가 없다고 합니다. 커원저는 의사 출신이고, 제 3 지대에서 성장한 거물이라 안철수에 비교되곤 합니다.

그렇지만 성격은 전혀 다릅니다. ‘직설적이고 유머러스한 화법’이 커원저의 성격적 특징입니다. 대만 유학생 김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성격은 오히려 홍준표나 이준석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인스타그램, 틱톡을 활발하게 활용하고, 뜨거운 감자를 주저없이 삼키며 논란을 피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키운 영향력으로 2019년에는 민중당을 창당했고, 2024년 대선에 출마했습니다.

민주화 세력의 타락과 커원저의 부상

커원저 총통 후보, 우신잉 부총통 후보의 낙선 인사

영어 학원 선생님으로 일하는 대만인 J는 평생 민진당을 지지해 왔다고 합니다. 민진당은 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이뤄낸 정의로운 정치 세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젠 아닙니다. ‘민주화 영웅’이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됐고, 민진당 당직자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민진당 유력 정치인들이 연루된 마스크 관련 부정부패 스캔들이 터졌습니다. 크게 실망했습니다.

대만 사람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민진당 또는 국민당뿐이었습니다. 그런데 J가 민진당에 실망했다고 해서 국민당을 선택할 수는 없었습니다. 국민당은 오랜 기간 대만을 독재 통치한 어두운 과거를 갖고 있고, 중국과 친하게 지내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민진당도 국민당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 그때 커원저가 총통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커원저는 젊은 세대의 이익에 집중합니다. 외국에서 보면 ‘양안관계'가 대만 대선의 유일한 쟁점 같습니다. 그러나 대만 젊은이들 고민은 우리나라와 비슷합니다. 너무 높은 집값, 낮은 임금, 불안정한 일자리가 고민입니다. 민진당이 ‘대만이 1인당 GDP로 한국을 추월했다’고 성과를 전시할 때, 커원저는 대만 청년의 임금이 한국의 절반에 못미친다는 점을 꼬집습니다.

‘세대’가 갈등 전선이 되어야 한다

뉴웨이즈가 개최한 퓨처보터 행사에서 본 통곡의 벽

한국의 상황과 곰곰이 비교해 보게 됐습니다. 지난 대선 때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성별에 따라 지지 후보가 갈렸습니다. 이것을 ‘젠더 갈등’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갈등 전선의 최대 쟁점은 ‘여성가족부 폐지’였습니다. 저는 여성가족부 폐지가 매우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우리 사회 공동체가 시간을 써서 논의할 만한 중요한 논점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모적입니다.

한국 사회의 생멸을 가르는 진짜 문제들이 있습니다. 지역 불균형, 줄어드는 좋은 일자리, 불어나는 연금과 건강보험 부담 등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이익이 충돌합니다. 이 충돌을 전선으로 삼아 치열하게 논쟁하고 입장차이를 조율하고, 누가 얼만큼 희생하고, 고통을 분담할지를 정하면서 해결책을 실행해나가야 합니다.

대만 역시 세대를 전선으로 삼는 개혁이 아직 화두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빠르게 세대갈등에 돌입할 것 같습니다. 대만 젊은이들은 커원저가 당선되지 않을 줄 알면서도 커원저에게 투표했습니다. 26.46%의 득표율, 2위 후보와 불과 7%P 차이입니다. 그들은 강요된 밸런스 게임을 거부하고 자신을 대변하는 정치를 선택했습니다. 갈등에 뛰어들 준비가 됐습니다.


대만 총통 선거 관전기 3부작 재미있으셨어요? 저는 대만에 관해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공부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우리 내부를 자세히 관찰하고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레퍼런스를 찾고 분석할 때 배울 수 있는 특별한 것들이 있다는걸요.

다음에 기회 되면 다른 나라 또 가보고 싶은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