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출마사유서 제출

포기와 집중

불출마사유서 제출

몇 달 전부터 종종 듣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4월에 치러질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계획은 없느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때는 조금 반갑기도 했습니다. 저의 정치를 기대해 주시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이제 ‘불출마사유서'를 내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불출마사유서를 쓰는 배경

따뜻한 차 마시다 혼자 뜨끔

최근 한 공공기관과 협업 미팅을 했습니다. 계단뿌셔클럽의 활동을 전부터 지켜보셨고, 의미 있는 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연락을 주셨다고 합니다. 만나서 당장 할 수 있는 협업부터 중장기적인 협업 방안까지 다양한 논의를 즐겁게 나눴습니다. 1시간 넘게 미팅이 진행되고 마무리되는 분위기, 당황스러운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대표님, 이번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으세요?”

사실 계단뿌셔클럽의 협업 미팅에서 저 질문을 받으면 걱정이 많이 됩니다. 대부분의 기업, 기관은 정치 중립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내용상 문제없는 협업이 저의 정치 활동 이력 때문에 깨지진 않을지 불안한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총선 출마 계획이 없기 때문에 “계획이 없다"고 답변하긴 하지만, 그래도 우려가 남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입장을 정확히 밝혀두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협업을 제안하는 분들은 계단뿌셔클럽에 대해 미리 충분히 조사를 합니다. 큰 팀일수록 자세하고 정확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때 저의 입장이 분명히 드러나 있어야 계단뿌셔클럽이 다른 파트너와 협업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불출마에는 두 가지 사유가 있습니다.

사유 1: 동료와의 약속

약속 안 지키면 생각 의자에 앉게된다

작년 봄, 저는 계단뿌셔클럽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 수빈 님께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당시 수빈 님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계단뿌셔클럽을 전업으로 해보고 싶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계단뿌셔클럽을 ‘프로젝트'가 아닌 ‘스타트업'으로 창업해 보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정치 활동 계획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습니다.

그 제안을 수락하면서 저는 당분간 정치활동을 하지 않고, 계단뿌셔클럽에만 몰두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복잡한 생각이 있어서는 아니었고, 스타트업 창업은 그 자체로 매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만 해도 제대로 해내기 어려운데 스타트업 창업과 총선 출마 같은 큰 프로젝트를 병행할 순 없습니다.

또 합리적 결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로를 정할 때 (1)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일인지 (2)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일인지 (3) 나의 문제해결력을 키울 수 있는 일인지 고민합니다. 당시 이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 출마보다 계뿌클에서 일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봤습니다. 요즘 정치 상황을 보면 출마했더라도 성과 내기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유 2: 공중전보다 지상전

계단뿌셔클럽의 현장

2024년에 필요한 정치는 ‘반영하는 정치’가 아니라 ‘설득하는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공동체가 지속가능해지려면 많은 개혁이 필요합니다. 그 개혁은 대부분 대중 또는 강력한 힘을 가진 이해관계자들이 반대합니다. 많은 사람이 느끼기에 당장 내게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 대응, 노동개혁, 연금개혁 같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제도권 정치는 선거에서 이겨야 하고, 선거는 유권자들의 즉각적 요구를 반영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도권 정치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공전하는 것 같습니다. 감히 유권자를 설득하려 들었다가는 유권자의 즉각적 요구를 반영하는 상대편에게 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설득이 중요한 시기에는 정치권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계단뿌셔클럽은 사람들을 감히 설득해도 됩니다.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의 막힘없는 이동’이라는 우리의 비전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에게 다가가 권유하고 읍소해도 승리해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많은 사람들이 우정을 발휘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우정이 차곡차곡 쌓이면 불가능했던 개혁을 돌파할 수 있는 신뢰자본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혁적인 정책과 신뢰자본의 관계는 차와 연료와 비슷합니다. 차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연료가 없으면 못 갑니다. 요즘 차가 부족한가요, 연료가 부족한가요?

출마 생각 없는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