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참사가 닥친다면

외양간 클럽

내 삶에 참사가 닥친다면

작년 8월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을 계기로 책 모임 ‘외양간 클럽’을 시작했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도 제대로 해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사회적 참사’를 주제로 네 권의 책을 함께 읽었습니다. 원래는 ‘구조적 해법' 같은 걸 공부할 목적이었는데요. 하다 보니 전혀 다른 질문을 두고 고민해 보게 됐습니다. 그 질문은 ‘내 삶에 참사가 닥쳤을 때, 난 어떻게 될까?’입니다.

주변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다

함께 읽은 책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참사 피해자가 된다면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큰 고통, 피해를 겪으면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가 곁을 지켜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로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면 피해자가 그 고마운 사람들을 괴롭히고 파괴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사회적 참사와 같은 큰 고통은 대개 온전히 복구되고 보상받아 그 이전처럼 돌아갈 수 없습니다. 원인이 사라지지 않으니 고통에서 벗어나기가 매우 힘듭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는 ‘곁’에게 의지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곁’조차 온전히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곁’에게 분노하고, 그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곁’은 떠나거나 혹은 파괴됩니다. 고통을 겪는 것도 억울한데,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까지 잃는 건 더 억울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저렇게 행동하게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점을 잘 기억해 두고, 큰 고통이 닥쳐왔을 때 ‘곁’을 잃지 않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겠구나, 그래야 소중한 것을 그나마 지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모론을 믿고 싶어질 것이다

아직도 세월호 침몰이 '미스터리'라 말하는 당신에게

뉴스타파의 <아직도 세월호 침몰이 '미스터리'라 말하는 당신에게>라는 다큐멘터리에서도 큰 배움을 얻었습니다. 다큐는 세월호 침몰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이 왜 그렇게 길어졌는지, 그마저도 왜 ‘무책임한 열린 결말’의 조사 결과로 끝난 건지 설명합니다. 원인은 ‘음모론’입니다. 알 수 없는 외부 충격으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외력설’이 자꾸 제기되어, 여러 번 재조사가 반복됐습니다.

국내외 대다수 전문가와 발견된 증거들은 배에 구조적 결함이 있어 침몰했다는 ‘내력설’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증거가 없음에도 ‘외력설’은 끊임없이 제기됐습니다. 유가족 중에도 ‘구조적 원인’이 아니라 ‘거대한 음모’ 때문에 자식을 잃었다고 믿는, 믿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과 생각이 통하는 일부 전문가들의 문제제기로 결론이 쉽게 나지 못했습니다.

다큐는 ‘차라리 음모론을 믿고 싶었던’ 유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은 이유가 ‘사회 시스템 문제’라고 생각하면 너무 허망하고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거악이 꾸민 음모’면 책임 지울 존재도 있고, 죽음에도 의미가 있는 느낌이었다는 증언입니다. 음모론에 끌리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구나, 나도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참사 피해자들이 ‘개인의 의지'만으로 일상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책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는 세월호 참사 생존자가 쓴 수필입니다. 이 책에는 놀라울 정도로 ‘남 탓'이 드뭅니다. 스스로 이겨내고 회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기록입니다. 그래서 더 마음 아픈 책입니다. 읽을수록 ‘회복'을 위해 필요한 노력해야 하는 건 사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사건을 매듭지어야 합니다.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등이 잘 처리되었다면 생존자들의 일상 회복은 훨씬 수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사회적 참사 이후 우리 사회의 대응은 부족한 점이 훨씬 많았습니다.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긴 채 ‘운 나쁜 사람이 내가 아니기를 바라는 사회'로 방치하고 있습니다.

참사 공부의 보람은 여기서 멈췄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참사’의 디테일들을 많이 알게 됐고, 개인이 어떤 점들을 유의해야 하는지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스스로를 구할 수 없고, 결국 사회가 변해야 한다는 점에서 막막했습니다. 왜냐하면 누가 참사를 겪어도 책임지고 돕는 사회를 만드는 방법은 잘 잘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비극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누가 다쳐도 지켜주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모두에게 이로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여러분의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