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부탁을 거절하지 마세요

사람들과 잘 지내는 법 (2)

작은 부탁을 거절하지 마세요

사람들과 잘 지내는 법 (2) : 우정으로 세상을 구하려면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합니다. ‘공감’이란 재능을 타고나지 못해 관찰, 분석, 연습, 시행착오를 거치며 ‘사람들과 잘 지내는 법’을 머리로 배웠습니다. 제 나름의 배움을 소개합니다. 여러분의 모험에 부디 보탬이 되기를!


느닷없이 정중했던 P의 카톡

'잘 지내기'의 핵심은 날씨가 아닐까 싶은 요즘 날씨

P는 명랑하고 장난기 많은 친구입니다. 대화하다 보면 30%는 ‘하하 호호 깔깔 낄낄’로 채우게 되는 유쾌한 친구인데요. 그런 P에게 어느 날 느닷없이 정중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A라는 회사로 이직하고 싶은데 혹시 아는 사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지원할 직무와 자신이 해온 것이 조금 다른데 그래도 괜찮을지, 회사 분위기는 괜찮은지 등을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A회사에서 일했던 J라는 지인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J와 연락을 나눈 지 오래됐다는 점입니다. 그렇지만 J는 친절한 사람이고, P와 통화로 몇 마디 나누는 것 정도는 흔쾌히 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J에게 연락해 제 친구 P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고맙게도 J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P에게 전달해달라며 부탁을 들어줬습니다.

P는 J와 통화한 뒤 A회사에 지원했고, 이직에 성공했습니다. J의 이직 성공 소식을 듣고 꽤 뿌듯하고 기뻤습니다. 밥도 한 끼 얻어먹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하나 특별할 것 없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죠? 저는 이 평범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타인의 작은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득인 이유 두 가지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부탁의 비대칭성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이대호

첫째, 작은 부탁을 들어주는 일은 노력 대비 큰 성취를 낼 수 있습니다. 부탁의 비대칭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경험을 예로 들어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부탁하는 사람이 얻는 효용과 부탁 들어주는 사람이 들이는 비용을 비교했을 때 보통 전자가 큽니다. 들어주는 입장에서는 ‘작은 부탁’이지만 부탁한 사람에게는 ‘큰일’인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P에게 사람을 소개해 준 일도 그렇습니다. P는 이직을 계기로 직무도 전환하고 싶었습니다. 커리어에 큰 영향을 미치는 ‘큰 부탁’을 제게 한 셈입니다. 그러나 제게는 지인에게 오랜만에 연락하는 어색함을 잠깐 참으면 되는 ‘작은 부탁’이었습니다. 제 도움이 P의 이직 성공의 유일한 이유는 당연히 아니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비대칭적’ 성취를 낸 것은 분명합니다.

부탁의 상호성

촬영의 상호성

둘째, 내가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 다음 중 여러분의 반응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요?

  1. 나를 도와주다니 정말 고맙군? 나도 언젠가 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꼭 이 은혜를 갚아야지!
  2. 나를 돕다니 정말 어리석군? 이번에 내가 도움받은 걸 빌미로 도와달라고 할지 모르니까 앞으로 최대한 멀리해야겠어!

내가 전자의 생각을 하는 것처럼, 타인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보통 부탁을 들어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보답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 보답은 또 다른 부탁으로 이어져 연쇄적 상호작용이 되기도 하죠. 반면 후자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부탁은 이어지지 않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의 부탁을 계속 들어주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살다 보면 타인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부탁을 들어준 적이 많다면, 도움 청할 곳도 많습니다. 그리고 과거 내가 부탁을 들어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건, 상대방에게도 반가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개 은혜를 갚을 기회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P에게 여러 도움을 받아왔고, 그래서 P의 이직 관련 부탁을 받았을 때 기쁘고 반갑고 흔쾌했습니다.


모든 부탁을 다 들어주며 살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부탁의 비대칭성과 상호성을 뒤집으면 ‘신중하게 생각할 부탁’도 골라낼 수 있습니다. 힘들고 피곤한 일인데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 같고, 별로 고마워할 것 같지도 않을 때는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들어주고 후회했던 부탁들은 이런 부탁이었던 것 같거든요.

여러분의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