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된 실패를 고백하자면

계단뿌셔클럽 (49)

반복된 실패를 고백하자면

사실 계단뿌셔클럽에는 ‘반복되는 실패’가 있었습니다. 매 시즌 의미 있는 장면들을 만들어왔고, 꾸준히 성장해 왔다고 생각하지만, 유독 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마무리된 ‘24 봄시즌, 마침내 그 한계를 돌파하게 됩니다.

반복된 실패 ‘데이터 목표’ 미달

<크러셔 클럽> '24 봄시즌 결과공유회

계단뿌셔클럽은 봄과 가을에 ‘정규 시즌’을 엽니다. 약 3개월간 정복 활동을 개최하면서 크루, 게스트 여러분과 함께 계단정보를 모으는 기간입니다. 매 시즌 시작할 때 여러 목표를 세웁니다. 목표는 크게 데이터 목표가 있고 사람 목표가 있습니다. 데이터 목표는 ‘얼마나 많은 장소의 계단정보를 모을 것이냐’가 핵심입니다. 사람 목표는 크루, 게스트 모집에 관한 것입니다.

매 시즌 ‘사람 목표’는 달성했습니다. 초과 달성한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데이터 목표’ 달성에는 항상 실패했습니다. 작년 가을시즌에는 15,000개 장소 데이터를 모으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절반 수준에 그쳤습니다. 무려 12개 지부가 만들어졌고, 크루, 게스트도 많이 모였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사람도 중요하지만 데이터가 문제해결의 핵심인데 매번 씁쓸했습니다.

원인은 많습니다. 활동을 2인 1조로 하다 보니 1인 1조로 하는 것에 비해 생산성이 낮습니다. 비가 와서 취소하게 될 때도 많은데, 그러면 계획된 활동을 못 하니까 목표량이 안 채워집니다. 참가 신청한 분들이 ‘노쇼’해서 차질이 생길 때도 많습니다. 정복활동에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에 불편한 점도 있죠. 근데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나쁜 사람 되기 싫은 마음’입니다.

한계 돌파

한계 돌파에 관해 설명하는 이대호

이번 시즌에는 15,000개 장소의 데이터를 확보하는 목표를 마침내 달성했습니다.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크루들이 더 고생했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정복활동 외에 여러 프로그램을 추가로 만들어서 더 많은 시간을 쓰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비가 내려도 급히 시간을 바꿔 정복활동을 했고, 무더운 6월에도 주말에 모여 데이터를 모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나쁜 사람 되기 싫은 마음’을 참느라 스트레스가 컸습니다. 어느 날은 갑자기 비 소식이 생겼습니다. 예전 같으면 정복활동 취소했을 텐데, 급하게 일정을 오후에서 오전으로 당겨 활동했습니다. 40명에게 이틀 전 갑자기 스케줄을 바꾸자고 하는, 불편한 결정입니다. ‘나쁜 사람 되기 싫은 마음’이 들어 피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함께 의논하고, 결정하고 안내했습니다.

‘특공대’ 활동도 그랬습니다. 운영진인 크루끼리 모여 60~70개씩 정복하는 활동이었는데요. 60~70개면 일반 정복활동 때의 1.5배~2배의 분량입니다. 그걸 무더운 6월에 하려니 저부터도 현기증 나더라고요. 그렇지만 목표 달성을 위해 꼭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최대한 재미있는 활동인 척 포장해 크루들에게 읍소했습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가 15,000개 목표 달성입니다.

문제해결은 고통을 수반한다

나쁜 사람이 되어 목표를 이룬 두 사람

화창하고 시원한 날 산책하듯 참여하는 것만으로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의 막힘없는 이동’이 가능한 세상을 만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과정에서 누구도 고통 받지않고, 재밌게 활동했을 뿐인데 ‘뾰로롱~’하고 문제가 해결된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면 저도 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도 되고, 나쁜 사람 될 필요도 없습니다. 참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겠죠.

그런데 그렇게는 영영 문제해결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제해결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그 사실을 외면하며 다른 노력을 최대한 기울인 최선이 지난 가을시즌입니다. 또 목표 달성에 실패했고, 이번 시즌에서야 미련을 내려놓았습니다. 동료들에게 부담을 주고, 그래서 좀 나쁜 사람 되더라도 목표를 이뤄 문제해결에 다가가자고 하는 게 옳다는 걸 비로소 받아들였습니다.

그 결과 ‘목표는 달성했지만, 전에 비해 크루들이 부담을 느꼈고, 크루들이 대거 이탈하는 건 어쩔 수 없었던 부분입니다’가 아니라 의외로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어제 결과공유회에서 그간의 실패를 고백하고 한계를 돌파한 멋진 일을 우리가 해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랬더니 ‘힘들었지만, 목표를 달성해 기뻐! 다음 시즌 또 가보자고!’라고 생각하는 동료가 많더라고요.

역시, 문제 해결의 열쇠는 내 마음에 있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 주 7일 몰두했던 봄시즌이 끝나면 섭섭할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섭섭합니다. 왜냐하면 잠깐 몇 주 준비 기간을 갖고 나면 바로 또 가을시즌을 해야하는 거더라고요. 주말에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삶이라니, 행복해! 행복합니다. 아, 행복하다!!!

목표를 달성하니 미안했던 마음은 잊어버린
여러분의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