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방 살던 친구의 성공 비법

나만의 일 하는 법

옆 방 살던 친구의 성공 비법

논스라는 창업가의 마을에서 2년간 100명의 창업가와 부대끼며 살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의 동거인들은 다 ‘나만의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요. 제각기 개성이 넘치지만 제 옆방에는 개중에서도 참 특이한 친구가 살았습니다. 오늘은 그 친구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나만의 일'을 하는 방법에 관한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창업가가 있습니다.

창업할래 창업가 & 문제 집착형 창업가

한 때 계뿌클의 크루이기도 했던 정 대표님

많은 창업가는 ‘창업’이 하고 싶어서 창업가가 됩니다. 이들은 시장 흐름과 소비자의 변덕스러운 요구를 관찰하며 창업 기회를 골라냅니다. 창업가 다수가 이 ‘창업할래 창업가’ 유형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유형은 ‘풀고 싶은 문제’가 있는데 그걸 할 방법이 창업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시장 흐름보다는 자신만의 문제 자체에 깊은 관심이 있습니다.

제 옆 방에 살던 정의준은 문제 집착형, 즉 후자의 창업가였습니다. 현대무용과 국제학을 전공하는 스무 살 대학생이었던 정의준은 맨날 춤 저작권 이야기를 했습니다. 음악과 달리 안무에는 저작권 제도가 없어 댄서들이 제 몫을 못 가져간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볼 땐 너무 불합리한데, 댄서 친구들이 춤 외에는 관심이 없어서 문제가 해결 안 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맨날 듣다 보니 지겨웠지만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해결하긴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왜냐면 아무도 모르는 문제였거든요. TV쇼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흥행, K-POP 산업의 성장으로 요즘 댄서들이 많은 주목을 받습니다. 그런데 5년 전만 해도 아니었습니다. 정의준에게는 친구들이 겪는 부조리지만 저 같은 대중에게는 ‘모르는 남 일’일 뿐이었습니다.

문제집착형 창업가의 장점

그에게 무릎을 꿇어버린 이대호

전략적 사고력, 성실성, 탄탄한 경력, 흔히 떠올리는 ‘유능하고 세련된 창업가’에 모습에 가까운 건 창업할래 창업가들인 것 같습니다. 문제집착형 창업가는 ‘특이하네’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대체로 대중적이지 않은 주제, 문제에 꽂혀있거든요.

근데 가만히 보면 정의준 같은 문제집착형 창업가들이 오래 합니다. ‘창업할래 창업가’는 사업 아이템을 바꿀 합리적 이유가 많습니다. 시장의 변화로 하던 일이 잘 안 될 것 같거나 더 나은 아이템이 보이면 바꿔야 합니다. 중요한 건 사업의 성공이지 몰두하던 아이템이 아니니까요.

반면 정의준은 ‘안무 저작권’이 목적이므로 어지간한 일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한 우물을 팝니다. 시장 동향이 조금 바뀐다고 해서, (원래도 될 것 같지 않았던) 춤 저작권에 대한 관심이 적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바꾸지 않습니다. 문제집착 창업가에겐 창업보다 그 문제가 훨씬 중요합니다.

그렇게 한 우물 파다 보니 하늘이 감동해 세상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예상도 못 했던 스우파의 흥행, 댄스 챌린지 문화의 세계적 부흥, 리아킴 등 대형 안무가 인플루언서의 등장으로 댄서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시장성이 없었던 일처럼 보였는데 이젠 해볼 만한 일처럼 보입니다.

감정이 이끄는 일

옆 방에 당신의 충직한 친구 이대호가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세요

정의준 대표님이 창업한 스타트업 무븐트(MVNT)는 게임회사와 안무가를 이어주는 춤 IP 거래 서비스를 만들고 있고, 신인 댄서들도 댄스 클래스를 열 수 있는 플랫폼 서비스를 내놨습니다. 아직 안무 저작권 법제화는 안 됐지만, 댄서들이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드디어 가능성을 인정받아, 최근 투자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저는 그가 논리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을 따랐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은 이성보다 끈질깁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자꾸 떠오릅니다. 정 대표님은 주변 댄서 친구들이 겪는 불합리한 환경을 보며 짜증과 분노를 느끼는데, 이 감정이 사라지지 않으니 몸과 마음이 ‘안무 저작권 문제 해결’로 자꾸 끌려갔습니다. 가능성이 잘 보이지 않아도 어쩔 수 없었죠.

창업해서 살아남으려면 그 일을 남들보다 잘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다른 사람이 안 가진 경험, 관점,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정의준 대표님은 5년 동안 문제를 풀려고 많은 사람을 만나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영향력 있는 안무가들을 동료로 만들 수 있었고,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제 대중도 그가 하려는 일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참 탁월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도 5년 동안 한 사업을 꾸준히 하는 일이 드뭅니다. 그래서 정의준 대표님 이야기가 참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만의 일’에 가장 중요한 재료는 으리으리한 이력, 탁월한 사고력이 아니라 나를 자꾸 붙잡는 미련한 우정일 수 있다는 걸 가르쳐주었습니다.

우정으로 난관을 돌파하는 정의준의 근사한 문제해결을 기대하며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