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로 버스 타면 벌어지는 상황

산문 (4)

휠체어로 버스 타면 벌어지는 상황

얼마 전 난생처음 휠체어를 사용하는 동료와 버스를 타봤습니다. 되게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거든요.

유쾌하지 않은 상상

역시나 버스로 이동할 것을 추천해준다

“수빈님, 지하철은 여러 번 갈아타야 하는데, 버스는 한 번에 가는 게 많아요. 요즘 저상버스 많이 늘었다는데 버스 타볼까요? 버스 타보신 적 있어요?”

“어… 저 버스 타본 적 거의 없는데… 오늘 한 번 타볼까요?”

“오? 그럴까요? 저도 휠체어 사용자랑 타는 건 처음인데… 괜찮겠죠…?”

“뭐… 괜찮지 않을까요…? 그렇게 붐비는 시간도 아니니까!”

휠체어를 사용하는 동료 수빈님과 함께 서울역에서 광화문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이동하려고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버스가 최적 수단입니다. 장애인콜택시는 보통 오래 기다려야 하고, 거리가 멀지도 않은데 지하철은 갈아타는 게 복잡합니다. 반면 버스는 한 번에 갑니다. 그런데 버스를 타려니 덜컥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왠지 유쾌하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거든요.

미디어에서 자주 본 상황들 있잖아요? 저상버스가 안 와서 여러 대를 보내고 나서야 탈 수 있다거나, 겨우 저상버스가 왔는데 휠체어 탑승 발판이 고장 나 있다거나, 기사님도 써본 적이 없어서 한참 낑낑대는데 승객들이 한숨 푹푹 쉬며 눈치 주는 장면을 상상했습니다. 만나본 적도 없는 기사님이 운전하면서 투덜대는 인서트까지 넣어보니, 으으, 그냥 다른 거 타는 게 나으려나?

예상과 전혀 다른 현실

곧 나올 피자를 예상 중인 이대호

비관적 상상은 처음부터 빗나갔습니다. 몇 대쯤 보내야 저상버스 탈 수 있으려나 보려고 지도 앱을 켜보니, 어라? 타려는 노선은 모조리 다 저상버스였습니다. 여러 대 보내고 탈필요 없이, 5분 뒤 도착하는 버스를 바로 타면 됩니다. 그리고 서울동행맵이라는 앱을 사용하면 ‘탑승 예약'도 가능합니다. 어느 정류장에서 휠체어 사용자가 타는지 기사님께 알려줄 수 있습니다.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휠체어 발판이 있는 뒷문 쪽으로 갔습니다.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뉴스에서 본 저상버스는 모조리 발판이 고장 나 있었거든요. ‘후후, 발판은 쓴 적이 없어 당연히 고장 나있겠지? 그리고 기사님은 한 번도 써본 적 없다며 허둥지둥하실 것이 뻔해! 다 예상하고 있지롱!’라고 생각했는데, 왠걸 1초 만에 뿅 발판이 튀어나와 설치가 완료됐습니다.

이어지는 상황도 상상과 전혀 달랐습니다. 승객들은 무심하거나 퉁명스러워야 했는데, 저희가 타자마자 젊은 승객 두 명이 후다닥 달려와 휠체어 탑승 구역의 접이식 좌석을 접으려고 낑낑댔습니다. 기사님은 건조하게 “제가 할 테니 가만히 계세요"라며 다가와 능숙하게 자리를 만들어 안내해 주셨습니다. 버스 문이 열리고 출발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1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 탈만한데…?

‘막힘없는 이동', 해볼 만하겠는데?

사진이 부족해 지금 급히 한 장 찍었는데 아름답죠?

2023년 기준 전국 저상버스 도입 비율은 26%입니다. 서울은 63%로 훨씬 높습니다. 즉, 이 경험은 서울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의 막힘없는 이동’은 여전히 아주 어렵습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매우 많습니다. 그렇지만 버스 이용 경험은 제게 큰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우리가 푸는 문제, 생각보다 꽤 해볼 만한 문제구나’하고 생각하게 됐거든요.

인상 깊었던 건 기사님과 승객들의 모습입니다. 미디어를 통해 접한 모습과 전혀 달랐습니다. 기사님은 능숙했고, 승객들은 도움이 되고 싶어 하거나, 혹은 불필요한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려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회적 합의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요. 아닌 것 같았습니다. 분명 다가가는 중인 것 같습니다.

인터넷 뉴스, 댓글을 보면 부정적인 의견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설득할 사람 너무 많은 거 같아!’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넷 여론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걸 머리로 알지만, 보다 보면 현실과 가까운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날 15분의 경험이 참 좋았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원한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갈 길이 아주 아주 멀어  보이지만, 생각보다는 금방 이 문제 풀 수 있다니까요? 게다가 여러분이 동참하시면 더 빨리 풀 수 있겠죠?

머지않아 가을시즌 초대장을 보내드릴
여러분의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