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사과가 필요한 타이밍

사람들과 잘 지내는 법 (4) : 우정으로 세상을 구하려면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합니다. ‘공감’이란 재능을 타고나지 못해 관찰, 분석, 연습, 시행착오를 거치며 ‘사람들과 잘 지내는 법’을 머리로 배웠습니다. 제 나름의 배움을 소개합니다. 여러분의 모험에 부디 보탬이 되기를!


응징, 배상, 사과

함무라비 법전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사과할 때는 잘못한 내용을 정확히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800년 전인 기원전 1750년경, 그 이름도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이 등장했습니다. 누군가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어떻게 처분할지 규정하고 있습니다. 282개 조항으로 되어있는데, 아래는 그 일부입니다.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을 멀게 했다면 그 자신의 눈알을 뺄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의 이빨을 부러뜨렸다면 그의 이도 부러뜨릴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의 뼈를 부러뜨렸다면 그의 뼈도 부러뜨릴 것이다.
  • 도둑이 소나 양, 당나귀, 돼지, 염소 중 하나라도 훔쳤더라도 그 값의 열 배로 보상해 주어야 한다. 도둑이 보상해 줄 돈이 없다면 사형당할 것이다.
  • 귀족이 평민의 눈을 멀게 하거나 뼈를 부러뜨리면 은화 1미나를 바쳐야 한다.

이 법의 주된 내용은 ‘응징’과 ‘배상’입니다. ‘응징’은 상대방이 내게 끼친 피해를 똑같이 혹은 더 세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공평해지지만 내가 입은 피해가 복구되지는 않습니다. ‘배상’은 내가 입은 피해를 경제적으로 측정해 돈이나 물건으로 받는 것입니다. 배상은 피해의 측정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많은 게 단점입니다. 곡식은 측정이 쉽지만, 몸과 마음의 상처는 어렵습니다.

참 신기한 사과의 발명

사과 할 일 많다보니 이런 글까지 쓰게된 이대호

응징, 배상과 비교할 때 ‘사과’는 부실한 처분입니다. 상대방에게 준 피해를 복구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과 공평한 상태가 되어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도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사과란 상대방에게 준 피해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두고 말만 하는 것입니다. 말만 듣고 순순히 용서하면 계산이 안 맞는 것 같은데, 인류는 일찍이 사과를 발명해 널리 즐겨 사용합니다.

사과만 받고 용서하는 것은 불공평(상대방에게 똑같은 손해를 끼치지 않으므로)하고 무책임(상대방에게 배상을 받지 않으므로)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아주 큰 장점이 있습니다. 쉽다는 것입니다. 사회를 이루어 살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입는 일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때마다 응징하거나 배상을 받아내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사과와 용서는 비용이 적습니다.

살면서 겪은 피해 중 대부분은 일상적이며 사소합니다. 반드시 배상, 응징이 필요한 중대한 사안이 있죠.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배상과 응징을 끌어내는 것보다 타당한 사과를 받고 용서하는 편이 사실 쉽습니다. 반대로 타인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 타당한 사과를 건넨다면 너그럽게 용서를 받을 확률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정확히 뭘 잘못했는데?

사과의 유용한 도구

저는 ‘자기 잘못을 정확히 짚어 설명하는 사과’를 좋아합니다. 제가 할 때도 그렇고, 제가 사과를 받아야 하는 입장일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기분이 아주 나빴다가도 ‘정확한 사과’를 듣고 나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아주 너그러워집니다. 피해가 복구된 것도, 배상을 받은 것도 아닌 데도요.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우리가 ‘불확실성’을 싫어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소박한 기대는 ‘어떤 피해도 입지 않는 것’이 아니라 ‘피해 발생 가능성 줄이기’입니다. 즉, ‘재발 방지’를 기대합니다. 정확한 사과는 다시 같은 잘못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기대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매력적입니다. 뭘 잘못했는지 정확히 안다는 건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능력이 있다는 거니까요. 반면, 뭘 잘못했는지 모르면 또 그럴 수 있으니, 화가 나는 것 같습니다.

사과가 필요한 상황은 보통 사소한 잘못을 한 경우입니다. 잘못이 사소하다고 생각하면 정확한 이유를 생각하기도 귀찮고, 설명하기도 쑥스럽습니다. ‘민망하게 뭘 이유까지 설명하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되겠지….’ 눙치듯 넘기고 싶죠. 그 때가 바로 ‘정확한 사과’가 필요한 타이밍입니다. 누구나 ‘당한 일’을 더 심각하게 생각하기 마련이잖아요?


요즘 너무 더워서 날씨에 사과 받고 싶은 심정이에요. 휴, 여러분 무더위에 건강 유의하시고요. 코로나19 감염병도 다시 유행이라고 하니 조심하세요!

열대야로 잠을 잘 못 자 피곤한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