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미국 할아버지 이야기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구경기
세계적 흥행몰이에 성공한 이벤트가 있습니다. 미국 민주당 전국대회(DNC)입니다. 올해 겨울 치러질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민주당 후보자를 지명하는 행사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버락 오바마, AOC 등의 DNC 연설이 화제가 됐습니다. 흥미가 생겨 여러 편의 연설을 찾아봤는데요. 의외의 연설에서 눈시울 붉어지는 명장면을 발견합니다.
주인공은 바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입니다.
이번 DNC가 흥행한 이유
미국 대통령 선거는 싱거울뻔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공화당 후보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승리를 예측했습니다. 특히 바이든과 트럼프의 TV 토론회 이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하는 바이든의 모습에 치매 의혹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반면 트럼프 후보는 총격을 당하고도 무사히 생존하면서 강인함을 보여주며 승기를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예상 못 한 일이 벌어집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직을 사퇴합니다. TV 토론회 이후 후보를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습니다. 지지율도 떨어졌고요. 그래도 바이든은 ‘사퇴는 없다’며 완강하게 버텼습니다. 총격 직후 사퇴 요구도 잠잠해진 상황이었는데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후보(이자 현 부통령)를 지지하며 후보직을 사퇴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해리스를 지지한다고 해서 그가 후보가 되어야 하는 법은 없습니다. 후보를 새로 정하는 경쟁 투표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해리스 외에도 쟁쟁한 대선주자가 많으니까요. 그러나 잠재 대선주자들은 불출마를 선언하고, 주요 원로들은 해리스 지지 입장을 발표합니다. 갈등 없이 일사불란하게 카멀라 해리스를 새 후보로 추대하며 빠르게 전열을 정비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not going back)는 것입니다.
50년 정치 인생의 피날레
그리고 한 달 뒤, 바이든은 민주당 대선후보를 지명하는 DNC의 첫날 마지막 연설자로 연단에 섭니다. 이날 연설에서 화제가 된 부분은 ‘American Anthem’이라는 노래 가사를 인용해 자신의 정치 여정을 집약적으로 설명한 문장 ‘I gave my best to you’가 나오는 대목입니다. 연설의 앞부분에 자신의 50년 정치 여정을 설명하고, 자신의 마음을 아래 가사를 인용해 표현했습니다.
“여러 세기에 걸친 노력과 기도가 우리를 오늘로 이끌었네. 우리의 유산은 무엇이 될 것인가? 우리 아이들은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내 생이 다했을 때 내 마음 깊이 알 수 있기를. 아메리카, 아메리카, 나는 당신에게 최선을 다했노라고(I gave my best to you)”
그러나 저의 명장면은 그다음에 나옵니다. 연설의 마지막 문단입니다.
“저는 상원의원이 됐을 때, 상원에 있기에 너무 젊은 나이였습니다. 서른도 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대통령으로 있긴 너무 나이가 많습니다. (청중 웃음) 그러나 제가 여러분께 얼마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는지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이건 정말 진심인데요. 제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온 말이고, 바이든의 이름을 걸고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29세에 미국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을 때보다, 지금 저는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더 낙관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군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미국입니다. 우리가 함께할 때 우리가 해내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신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그리고 우리의 군대를 신께서 지켜주시기를!”
희망
이 연설을 보면서 미국의 힘을 느꼈습니다. 우리 앞에 가파른 내리막길이 기다리는 것 같고, 우리 세대는 우리 운명을 바꿀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상황 인식이 다르지 않을 텐데, ‘80년 살아봐서 아는데 우리 말이야, 잘 할 수 있어. 내 말 믿으래도? (찡긋)’라며 대선 후보직에서 물러나며 미래를 여는 어른이 있다는 게 부럽고 감동적이었습니다.
바이든은 ‘우리가 함께한다면’을 낙관의 전제로 제시합니다. 맞습니다. 우리 공동체의 문제들 대부분 해결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건 누구도 변하지 않을 때 얘기입니다. 사람들이 뜻을 모으고 행동을 바꾸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낙관을 꼭 움켜쥐고 끈질기게 설득하다 보면, 80년쯤 지났을 때 많은 것이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이렇게 말하면 되겠죠?
We gave our best to you.
이제 겨우 30년쯤 살았으니 50년이나 남았네요.
완전 럭키대호잖앙!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