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불행을 선택하는 이유

산문 (5)

매일 아침 불행을 선택하는 이유

2024년을 시작하면서 몇 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중 대부분을 지키지 않았거나 못 했습니다. 거의 유일하게 지킨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운동 꾸준히 하기’입니다. 운동 유목민이었던 저는 마침내 F45라는 그룹 운동에 정착했습니다. 그 덕분에 아침마다 몹시 불행합니다.

운동 선택의 기준

약간 영혼이 나간 이대호

저는 운동에 재능이 없는 편입니다. 잘하는 구기 종목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이 재능 없는 일엔 관심을 두지 않는 법, 성장기 내내 운동을 멀리했습니다. 잘하지 못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평생 운동은 취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른 무렵 생각이 달라집니다. 재미가 아니라 체력, 건강관리를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상식을 받아들이고 마음 붙일 운동을 찾기 시작합니다.

저는 효율적인 운동을 찾아봤습니다. 운동을 즐기는 친구들을 보면 재미있는 운동을 찾습니다. 대개 팀 스포츠이거나 대결 종목입니다. 풋살, 농구, 테니스 등이 인기가 많습니다. 제게 그런 운동들은 안 맞습니다. 잘 못 해서 어차피 재미를 못 느끼고, 시간 대비 운동 효과가 적습니다. 운동량은 많지만 근력 운동, 유산소 운동 비중이 보통 안 맞고 몸 한쪽만 쓰는 운동이 많습니다.

지금 ‘운동도 못 하는 게 되게 까다롭네’라고 생각하셨죠? 조건 더 있습니다. 좀 강제성이 있어야 하고, 너무 비싸면 안 됩니다. 꾸준히 가려면 의지만으론 안 됩니다. 돈이 아깝든, 예약하는 방식이어서 약속을 지켜야 하든 강제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PT를 받으라고요? 안 됩니다. 많이 저렴해지긴 했지만, 좀 비싼 운동이거든요. 그래서 찾게 된 것이 크로스핏입니다.

아, 또 하나 조건이 집에서도 가까워야 하는데…

F45는 호주에서 시작되었으며…

불행의 순간을 사진으로 잘 남겨주는 F45

크로스핏을 1년 정도 다녔습니다. 크로스핏은 근력 운동, 유산소 운동 여러 개 동작을 코스로 만들어 정해진 시간 내에 해내는 단체 운동입니다. 열거한 조건에 딱 맞는데 너무 불행했습니다. 동작이 제게 너무 어렵고 강도가 높았습니다. 게다가 제가 다닌 센터에는 고수가 많아 동작이 자주 바뀝니다. 운동신경 나쁜 초보자인 저는 1년을 해도 뭐 하나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좀 쉬운 크로스핏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친구 Y가 F45라는 운동 센터를 다니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운동하는 사진을 여러 번 올렸거든요. 궁금해서 Y에게 물어보니 “크로스핏이랑 비슷한데 좀 더 단순하고 동작이 쉬워”라고 알려줬습니다. 찾아보니 집 근처에도 F45 지점이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2024년 새해를 맞아 회원권을 끊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F45를 해보니 Y 설명이 정확했습니다. 아주 어려운 동작이 없고, 동작이 너무 다양하지 않습니다. 운동 강도도 더 잘 맞았습니다. 일단 시간이 짧습니다. 제가 다녔던 크로스핏은 1시간, F45는 이름처럼 45분입니다. 유산소, 근력 운동을 골고루 하는 점은 크로스핏과 비슷합니다. 운동 중에 몹시 불행하다는 점은 같은데 그래도 F45가 좀 더 따라가고 있는 느낌이 들어 좋습니다.

매일의 깨달음

그래도 요즘 아침에 시원해서 나갈 때 행복합니다

아침마다 불행합니다. 주 3, 4회 가는 것이 목표인데 매일 아침 ‘오늘 가지 말고 이번 주는 2번만 갈까? 이번 주는 바빴으니까 두 번만 가도 너무 기특한 거 아닐까?‘하고 생각합니다. 겨우 이겨내고 도착하면 운동하는 내내 ‘으,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며 남은 횟수와 시간을 셉니다. 코치님들의 매서운 감시와 같이 운동하는 파트너들의 열정 탓에 설렁설렁 하기도 어렵습니다.

딱 45분이 지나면 휘슬이 울리고 운동이 끝납니다. 그 순간 거대한 수력발전소의 수문이 열린 것처럼 행복이 밀려 들어옵니다. 행복감에 몸이 잠겨버립니다. 이유는 단 하나, 더 이상 고통을 참으며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된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해 웃음이 납니다! 오늘도 도망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해냈다는 뿌듯함도 은은히 퍼집니다.

불행의 종료는 행복입니다. F45 덕분에 이 사실을 자주 상기합니다. 기한 있고 대가 있는 고통에 스스로를 밀어 넣으면 행복이 따른다는 걸 생각하게 됩니다. 일할 때 이 생각이 도움이 됩니다. 목표로 향하는 길목에서 어려운 일을 마주하면 반사적으로 피하고 싶습니다. 그럴 때 운동의 교훈이 작동할 때가 있습니다. 종목은 다르지만, 그 불행 너머의 행복을 상상하게 해주거든요.


어제 갔더니 100회차 참석이라면서 기념 티셔츠를 주셨습니다. 100번을 갔는데도 여전히 아침마다 몹시 가기 싫은 것이 놀랍고, 건강과 체력의 변화를 느끼지 못해 신기하지만, 뿌듯했습니다. 하기 싫은 일 100번 참고 해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합니다.

F45에서 운동 끝날 때마다 하는 구호가 있습니다.
Team Training Life Changing!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