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석, 부족을 위해 약탈하는 자

흑백요리사 시청후감

최현석, 부족을 위해 약탈하는 자

제가 흑백요리사에서 제일 재미있게 본 라운드는 ‘흑백 팀전’이었습니다. 4명의 리더가 팀을 승리, 패배로 이끄는 모습을 비교해서 보는 게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최현석 셰프입니다. 리더십의 약탈적 속성을 잘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최현석의 리더십에 감탄하는 이유

출처: 넷플릭스

많은 사람이 최현석의 리더십에 감탄합니다. 저는 세 가지 역량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전략’입니다. 최현석은 토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팀전이 시작되자 팀원들에게 역할을 일러주고 필요한 재료를 모조리 확보합니다. 어떤 음식을 만들어서 승부를 볼지 구체적인 설계를 혼자 다 끝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려는 게 분명합니다. 즉,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는 ‘약탈’입니다. 제가 가장 흥미롭게 본 장면은 상대 팀의 ‘대파’를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귀한 재료 가리비를 이미 싹쓸이해서 상대 팀의 불만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습니다. 아랑곳하지 않고 상대 팀에 가서 대파를 구걸해 옵니다. 너무한 것 아니냐는 힐난도 무시하고 어떻게든 대파를 가져옵니다. 심지어 상대 팀은 흑수저, 자기는 백수저인데 관용 따윈 없습니다.

셋째, ‘솔선수범’입니다. 요리를 만드는 일도 힘듭니다. 그렇지만 팀전에서 사람들이 가장 하기 싫었을 일은 ‘약탈’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체면과 도의를 내려놓고 안 그래도 불리한 상대 팀의 자원을 빼앗아 오는 나쁜 짓은 누구나 하기 싫은 일입니다. 최현석은 그 일을 직접 합니다. 이 과정에서 최현석이 리더십을 공고히 하고, 자신의 독단적 결정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우리 편만 생각하는 리더십이 좋은 건가?

출처: 넷플릭스

약 10년 전, 제가 사는 성남시에서 큰 갈등이 있었습니다. 중앙정부가 국가 재정을 운용하는 규칙을 변경하려고 했습니다. 규칙을 바꾸게 되면 성남시처럼 세금이 많이 들어오는 도시는 몫이 줍니다. 대신 이 몫을 세금이 적게 들어오는 경기도 내에 도시에 나눠주게 됩니다. 당시 성남시장이 이 조치에 공개적으로 반발하면서 중앙정부와 큰 갈등이 생긴 사건입니다.

제가 이 사건을 알게 된 건 성남시가 온 버스 곳곳에 이 사안의 부당함을 알리는 전단을 붙였기 때문입니다. 그걸 읽고 저는 성남시의 판단과 행동이 너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균형발전은 매우 중요한 목표입니다. 그리고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부유한 지자체가 양보해야 합니다. 지방정부의 리더는 국가 공동체 전체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마땅한데 자기 팀 이익만 챙긴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관점에서 최현석의 리더십은 비판의 대상입니다. 더 많은 기회를 가진 백수저팀이 귀한 식재료 가비리를 싹쓸이했고, 대파까지 가져왔으니까요. 게다가 최현석의 뻔뻔한 태도에 흑수저팀은 기분이 상해 사기가 떨어지는 모습까지 보여줍니다. 우리 편의 이익만을 생각할 뿐 구조적 모순이나 부조리에는 아무 책임 없는 리더십, 과거의 저는 동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약탈 않는 자, 리더가 될 수 없다

출처: 넷플릭스

10년 전에는 내가 맡은 팀의 이익보다는 더 큰 공동체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 큰 지도자의 자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팀으로 일하는 경험이 쌓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내 팀과 더 큰 공동체의 이익이 충돌할 때 더 큰 공동체의 이익을 오로지 추구하는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리더의 팀원이 되고 싶은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경쟁은 한정된 몫을 나눠 갖는 약탈적 경쟁입니다. 같이 잘 되는 결과가 있는 경쟁은 아름답지만 드뭅니다. 팀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약탈적 경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때 ‘전체 공동체’와 ‘상대 팀의 입장’을 헤아리는 리더는 패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성취를 만들지 못하고, 성취를 만들지 못하는 리더는 팀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흑백요리사는 ‘부족을 위해 기꺼이 약탈하는 자(최현석)’, ‘다른 부족의 입장을 배려하는 자(불꽃남자)’의 승부를 보여줘 재밌었습니다. 아마 패배한 팀 팀원들에게 리더를 선택하라고 하면 대부분 얄미웠던 최현석을 고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 부족을 위해 약탈할 수 있는 자가 부족을 계속 이끌 수 있고, 아이러니하게도 더 큰 공동체를 이끌 기회를 얻습니다.


흑백요리사를 보면서 시간이 흘러 저의 인식이 변했다는 점을 생각해보게 되어 재밌었습니다. 또 재미있었던 포인트는 ‘비빔 인간’이었는데요. 다음 편지에는 ‘비빔 인간’에 대해 쓸지, 다른 이야기를 쓸지 고민 중입니다. 무튼 2주 뒤에 만나요!

감기 조심하세요!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