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가 큰 상을 받은 날

계단뿌셔클럽 (52)

동료가 큰 상을 받은 날

박수빈 공동대표님이 브라이언 펠로우에 선정됐습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설립한 브라이언임팩트 재단은 매년 탁월한 사회혁신가를 펠로우로 선정하고 지원합니다. 그동안 여러 훌륭한 분들이 선정된 프로그램에 함께 일하는 동료가 선정되어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12월 3일에는 BBC 2024년의 여성 100인에도 선정!)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주변에서 그의 업적이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왜 대단한지 해설하곤 합니다. 저는 이렇게 어떤 사건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 주는 이야기를 좋아하는데요. 제게 그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오늘 주제는 제가 ‘박수빈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안전지대를 만든 전반전

브라이언 펠로우 5인

수빈님은 일찍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휠체어를 타다 보니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늘 도움을 받기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도움을 줄 수도 있어야 할 텐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해 보니 답은 공부였습니다. 실제로 공부를 잘한 덕분에 친구들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좋은 학교, 연이어 좋은 직장에 갈 수 있었습니다. 이 ‘좋은 공동체’는 수빈님의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해 줬습니다. 학교는 (완벽하진 않지만) 이동약자를 위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고, 대기업의 인사 시스템은 출퇴근을 별도로 도와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학교와 직장에서 좋은 친구, 동료들을 많이 만나서 관계를 맺고 서로 도우며 어울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수빈님을 회사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안전지대 건설을 끝낸 상황이었습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주목받는 회사에서 핵심 직무를 담당하고 있었고, 성품과 능력에 모자람이 없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도우며 평화롭게 지내는 공동체였습니다. 차별적 사회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수빈님은 개인기로 안전지대를 건설해 스스로를 구해냈습니다.

억울한 숙명

억울함에 혼이 조금 나간듯한 두 사람

사회문제의 당사자가 문제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할 수만 있다면 ‘스스로를 구하는 것’입니다. 수빈님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눈물겨운 노력으로 유능해지고, 유능함으로 안전지대를 건설해 스스로를 좀 구해내고 나면, 부당하고 날카로운 질문이 불쑥 찾아옵니다.

‘근데, 나만 이렇게 문제에서 벗어나 잘 살아도 괜찮은 걸까?’

이 질문이 부당한 이유는 사실 사회문제 해결의 책임이 당사자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누가 해결해야 할까요? 문제를 일으킨 사람입니다. 보행 장애인이 겪는 이동의 문제를 누가 일으켰나요? 책임 소재를 지목하기 어렵습니다. 확실한 점, 당사자 책임은 아닙니다. 장애를 가지게 된 건 문제를 일으켜서가 아니라 그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이기 때문입니다.

사회 전체가 책임질 문제로 누군가 우연히 불편을 겪고 있다면, 이 빚의 최우선 변제 책임은 비당사자에게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해결할 능력과 자원도 더 많이 갖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당사자가 아니면 책임은커녕 문제의 존재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박수빈같이 문제를 잘 알고,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당사자에게 문제가 찾아옵니다. 해결 좀 해달라고요.

그중 누군가는 결국 문을 열어주게 됩니다. 억울하고 부당하지만 숙명입니다.

숙명의 수용, 모험의 시작

모험이 시작되던 날 (근처)

사회문제를 경험하는 당사자는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것만으로 벅찹니다. 차별적 구조와 환경 때문에 이렇게 힘든데, 세상까지 구하라는 건 너무합니다. 더 자유롭고 큰 힘을 가진 사람들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잘 생기지 않습니다. 공동체의 진보는 사회문제를 경험하는 당사자가 자기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를 풀기로 결심했을 때 시작됩니다.

제가 보기에 수빈님이 숙명을 받아들이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정말 어렵게 만든 귀중한 안전지대를 깨고 나가야 하고, 억울한 마음을 털어서 버리고 책임 의식을 채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도 창업가가 으레 그렇듯 냉소와 불안을 견디는 험난한 모험을 해야 합니다. 두렵지만 모험을 결정했고, 지난 3년 동안 초심을 잃지 않고 해왔습니다. 그래서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모험에 있어 가장 소중한 응원과 인정은 계단뿌셔클럽을 함께 만들어가는 동료들로부터 나옵니다. 가끔 괴롭기도 한 이 모험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원동력은 명백히 클럽을 함께 꾸려가는 동료들의 우정입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이렇게 저명한 곳의 지지를 받아도 참 좋겠습니다. 쑥스럽고 새삼스러운 생각도 말로 표현해 볼 수 있으니까요.


브라이언 펠로우 선정을 마음 깊이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세요!

당신의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