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후 걱정이 더 많아진 당신에게
산문 (6)
탄핵 가결의 순간, 커다란 스피커에서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 퍼졌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목청이 터지게 노래했습니다. 환희의 해일에 잠긴 수많은 사람들과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희망에 부풀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집회 현장을 빠져나온 친구들과 밥 먹을 식당을 찾아 헤매는 동안 이미 깜깜해졌습니다. 주문한 메뉴가 나왔을 땐 벌써 환희는 물러가고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걱정의 핵심은 바로 ‘정치가 더 나아질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희망대로 정치는 더 나아질 수 있을까요?
더 나은 정치의 기준
어떠해야 정치가 더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두 가지 기준으로 ‘더 나은 정치’를 정의합니다. 첫째는 ‘차별 해소’입니다. 둘째는 ‘생산성’입니다. ‘차별 해소’는 정치가 향하는 방향에 관한 기준이고, ‘생산성’은 그 방향으로 가는 속도에 관한 기준입니다.
‘차별 해소’, 저는 정치의 주요 목표가 차별을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마땅히 누려야 할 삶을 살지 못합니다. 마땅한 권리를 가능한 보장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회 경제적 차별을 줄이는 법, 제도가 잘 만들어지면 ‘더 나은 정치’입니다. 가령 대한민국 모든 장소에 경사로를 설치할 수 있는 법과 예산을 만들면 좋은 정치입니다.
방향도 중요하지만 ‘속도’도 중요합니다. 생산성이 높은 정치가 ‘더 나은 정치’입니다. 이건 이견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중요한 사안에 관해 공부하고, 입장이 다르더라도 서로의 의견을 들어보고, 절충점을 찾아내고, 마침내 결정하고, 결정한 뒤에는 문제없이 정책이 잘 작동하는지 점검하고 개선 방안을 고민하는 정치가 좋은 정치입니다. ‘협치’라고도 합니다.
차별 해소는 노란 불, 생산성은 빨간 불
사람마다 좋은 정치, 더 나은 정치의 기준은 다르겠죠? 제 기준은 차별 해소, 생산성입니다. 이 기준에서 탄핵을 계기로 앞으로 정치가 더 좋아질까를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차별 해소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서 노란 불, 생산성은 더 나빠질 것 같아 빨간 불입니다.
탄핵 이후 차별을 줄이는 노력에 대한 공감대가 강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이삼십 대 여성 유권자의 정치 참여가 더 활발해졌기 때문입니다. 개인 차가 있지만, 2030 여성 유권자 집단은 사회적 차별 해소에 대체로 긍정적입니다. 정치는 모든 국민의 입장을 고르게 대변하지 않습니다. 활발한 집단의 관심과 이해관계를 더 반영합니다. 이삼십 대 여성의 참여가 활발해졌고, 주목받고 있으므로 이들의 지향과 관심이 더 정치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탄핵 이전에도 정치의 생산성은 매우 낮았습니다. 앞으로 더 떨어질 것입니다. 생산성이 높아지려면 대화하고 양보하고 타협해야 하는데 앞으로는 더 안 할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이 탄핵에 반대했으므로 대화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을 원수로 생각합니다. 서로 적개심이 더 커졌습니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더 강렬하게 타오르는 증오와 싸움의 정치가 예상됩니다.
초록 불로 바꾸는 방법?
친구들과 2차까지 옮겨 늦은 시간까지 떠들었습니다. 주된 대화 소재는 어떻게 이 기회를 잘 살려서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였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생산성보다는 차별 해소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탄핵을 계기로 많은 사람이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매우 늘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꺼뜨리지 않고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로 잇고 변화를 만들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생산성’의 문제에 자꾸 생각이 맴돕니다. 차별 해소는 방향, 생산성은 속도입니다. 방향이 맞아도 속도가 0이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탄핵은 분명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 낸 대단한 성취인데, 싸움 정치에 기름을 붓는 사건입니다. 중요한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싸움만 할 위기, 그야말로 빨간 불입니다. 이걸 어떻게 초록 불로 바꿀 수 있을까요?
지혜로운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은데, 정말 모르겠습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혹시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신가요?
부쩍 나라 걱정이 많아진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