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낭만을 품고 사는 사람들
2024년 마지막 편지
세상엔 독특한 낭만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낭만파 사람들은 ‘웬만하면 세상에 기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2024년 마지막 편지에서는 낭만파 여러분과 함께 ‘초심’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낭만적 딜레마
대학을 막 졸업하고 취업 준비 중인 친구 Y는 ‘초심’ 때문에 고민입니다. Y는 세상에 기여하며 살고 싶다고 합니다. 어떤 회사에 가야 초심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는지 고민이 많습니다. 관심 있는 회사 목록을 만들고,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각종 언론 보도를 분석하면서 ‘진정성’ 있는 회사인지 아닌지 성실히 따져보기도 했습니다. Y의 기준을 통과한 회사는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 심란한 점은 ‘성장’을 추구할수록 ‘초심’과 멀어질 것 같았다는 점입니다. 목록을 만들고 보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회사’ 중에는 공익과 무관한 곳이 많고, 세상에 기여하는 일을 하는 곳 중엔 ‘내가 성장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팀이 많았다고 합니다. 세상에 기여하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곳은 정말 드물더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Y의 고민에 빠져들지 못했습니다. ‘요즘 취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기준을 줄여서 일단 커리어를 시작하는 데 집중해 보자!’하는 기성세대다운 생각이 반사적으로 들었습니다. 근데 계속 듣다 보니 남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꾸준히 성장하되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인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낭만적 열정을 지닌 인간들의 영원한 딜레마입니다.
어떻게 초심을 유지할 것인가?
Y와 궁리하여 내린 결론은 ‘모험하되 낭만적 공동체에 의지할 것’입니다. 세상에 기여하는 삶은 열망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실력이 필요합니다.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장하려면 다양하고 치열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공익과는 관계가 적지만 배울 점이 많은 회사’에서 경력을 쌓는 것도 유용합니다. 초심에서 멀어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을 해야 합니다.
Y는 ‘일단 성장해야지!’하고 막상 취업해서 다니다 보면 지금 하는 생각들을 잘 안 하게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실력이 쌓이고, 권한이 생기고, 급여가 늘면 낭만적 열정을 대체할 수 있는 재미와 의미가 새롭게 등장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때도 지금의 초심을 유지하는 건 개인적인 성찰만으로는 어려운 것 같다고 저는 말했습니다. 그걸 가능케 하는 건 ‘공동체’입니다.
낭만적 열정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이걸 베이스캠프로 두면 멀리 가도 돌아올 수 있습니다. 베이스캠프의 올바른 활용법은 거기서 영원히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안전지대를 믿고 최대한 멀리 가보는, 도전의 추진 로켓입니다. 의지할 수 있어야 멀리 갈 수 있습니다. 낭만파 공동체에 뿌리를 두면 초심을 지키며 다양한 경험을 쌓고,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대호와 친구들의 모험
Y는 계단뿌셔클럽이 초심 관리를 해주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낭만적 열정을 친한 친구들에게도 공감받기 어려운데, 계뿌클에서 활동하며 만난 동료들과는 편히 나눌 수 있었다면서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저도 그렇습니다. 의지하고 용기를 구할 목적으로 시작한 공동체는 아니었지만, 동료들과의 대화와 협동이 초심을 유지하는 데 큰 힘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대호와 친구들의 모험’이라는 제목으로 편지를 꾸준히 쓰고 여러분과 대화하는 이유도 같습니다. 이제는 이 편지를 읽는 한 분 한 분이 누구신지 저도 정확히 모르는 상황입니다! (처음엔 다 아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렇지만 이따금 이 글을 읽고 계시다는 건 여러분 마음속에 낭만적 열정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소중한 시간을 다른 데에 쓰시지 않았을까요?
유능해지는 것도 매우 어렵잖아요? 그 와중에 다정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시느라 올 한 해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올해 반대 방향으로 어려웠어요. ‘다정했으면 됐지’하며 유능해지길 놓고 나태해지고픈 유혹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편지 꾸준히 쓰며 성찰하고, 여러분과 (저만의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이만큼이나마 이겨낼 수 있었어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내년에도 낭만적 열정을 공유하며 서로 의지하는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좀 더 초심을 간직하며 용감하게 모험을 이어 나가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내년에는 좀 더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할게요!
슬프고 괴로운 일이 많은 연말입니다.
몸과 마음 건강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당신의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