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만화
계단뿌셔클럽 (54)

계단뿌셔클럽이 사단법인 창단식을 했습니다. 이 행사에서 저는 ‘지난 줄거리’를 맡았습니다. 계단뿌셔클럽이란 아이디어가 탄생한 2021년 4월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약하기 위해 4년의 기록, 특히 사진들을 나열해 놓고 찬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생겼습니다.
뜻밖의 시작, 뜻밖의 전개

2021년 어느 봄, 수다를 떨다 직장 동료 수빈 님이 흥미로운 서비스 아이디어를 이야기했습니다.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을 위한 접근성 정보 제공 서비스’, 계뿌클의 씨앗이 된 아이디어입니다. 저는 그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동료와 2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것이 왜 필요한지 바로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너무 어려운 문제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사실 주요 지도 서비스를 운영하는 빅테크를 찾아가 설득할 수 있는 ‘시드 데이터’만 모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빅테크가 우리 데이터, 경험을 참고해 접근성 정보 제공 기능을 만들게 될 거라고, 혹시 설득에 실패하면 우리도 거기서 깔끔하게 중단하면 되겠지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직접 서비스를 운영할 건 아니니까요.
사이드 프로젝트로 2년쯤 해보고 나서 우리가 얼마나 무모한 생각을 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사이드 프로젝트로 빅테크를 설득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계획대로 ‘깔끔하게 중단’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는 이미 눈을 반짝이며 계단뿌셔클럽의 다음 시즌 목표는 무엇인지 물어보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거든요. 서비스와 클럽을 함께 만들어온 동료들 말입니다.
소년만화적 서사

그 이후의 전개는 아시는 대로입니다. 수빈님과 저는 하던 일을 정리하고 창업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정부는 할 수 없고, 빅테크는 하지 않는 일을 직접 하기로 결심합니다. 접근성 정보 중심의 탐색 플랫폼을 직접 만들어서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이 이동을 시작할 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로 합니다. 같은 꿈을 꾸는 수많은 친구, 동료들과 함께 지금도 달려들고 있습니다.
창단식 발표 자료를 만들면서 이 과정을 돌아보니까 ‘소년만화’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소년만화를 좋아했는데요. 소년만화를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1) 순진하고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는데 (2) 왜인지 동참하는 동료가 점점 늘어납니다. (3) 종종 위기에 처하지만, 우정의 힘으로 어떻게든 극복하며 성장합니다.
제가 계단뿌셔클럽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저는 계뿌클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단지 우정 때문에 힘을 합치고, 마침내 거대한 문제를 쓰러뜨리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데요. 이런 서사는 제가 어린 시절 진지하게 동경하던 무모하고 순진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년만화의 서사와 닮아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소년만화를 좋아했던 저조차도 만화 볼 때 몰입하기 힘들었던 장면들이 있습니다. 주인공들이 위기에 처하면 밑도 끝도 없이 ‘우정’ 타령하는 장면들입니다. 동료들이 자신을 구하러 올 테니까 그때까지만 버티면 될 거라고 굳게 믿는 모습을 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장면을 볼때면 좀 황당했습니다. 아니, 위기 상황을 어떻게 매번 친구의 도움으로 극복하나요?
그런데 계단뿌셔클럽의 지난 4년의 사진을 늘어놓고 보니 현실은 더 황당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염치도 없이 수많은 친구들 도움을 받은 건지, 이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이렇게 결연한 표정으로 빼곡하게 적재적소를 채우고 있는 건지, 어쩜 이렇게 모든 위기를 우정 원 툴로 극복해 왔는지 신기하고 어안이 벙벙하고 고마워서 글썽이며 웃었습니다.
계단뿌셔클럽은 여러분이 이 소년만화에 함께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저에게 진심으로 조언해 주시고, 계단뿌셔클럽을 주변에 알려주시고, 정복활동에 와주시고, 천금 같은 동료 크루가 되어주시고, 펀딩에 참여해 주시고, 다양한 방법으로 이 서사의 등장인물이 되어주신 여러분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오늘의 계단뿌셔클럽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뭐냐고요? 창단식에서 계단뿌셔클럽은 올해 ‘서울 완전정복’을 선언했습니다. 해낼 자신이 있는 구체적인 계획입니다. 이미 최종 목표인 10만 개 장소 중에서 30% 이상을 정복했고, 수천 명의 크러셔와 함께 남은 곳들을 정복할 예정입니다. 이걸 해내면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이 서울에서는 쉽게 이동을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근데, 이 목표 해내려면 '우정'의 힘이 필요합니다.
함께하고 싶은 분들은 아래의 '함께 하기'를 눌러주세요!
소년만화 2권도 여러분과 함께 쓰고 싶은
당신의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