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비빔밥과 브라질 군사독재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비빔밥도 먹고, 세 편의 영화를 봤는데요. 세 편 중 제일은 <계엄령의 기억>입니다. 상시 계엄령 상태에 가까웠던 1970년대 브라질 군부 독재 사회를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독재정권에 남편, 아버지를 잃은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아버지는 맘대로 민주화운동을 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갖게 됐습니다.
*오늘 편지에는 영화 <계엄령의 기억>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루벤스 파이바의 정의로운 죽음
루벤스 파이바는 토목 기술자입니다. 배우자인 에우니시 파이바, 다섯 명의 미성년 자녀와 함께 삽니다. 루벤스는 군사 독재 이전에는 국회의원으로 일했는데, 군부가 집권하면서 국회를 해산했습니다. 몇 년 동안 가족들과 함께 해외에 망명하러러 갔다가 브라질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는 정치에 손을 떼고 평범한 일을 합니다. 가족들과 얼굴을 부벼대며 행복하게 삽니다.
어느 날 비밀경찰이 집에 찾아옵니다. 루벤스는 정장으로 갈아입고, 가족들을 안심시키곤 순순히 따라나섭니다. 그리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그를 체포한 사실조차 부인합니다. 수십 년 뒤에야 밝혀집니다. 정부는 루벤스를 감금했고 고문했고, 살해했습니다. 루벤스는 사실 민주화 운동가들을, 끌려간 이들의 가족을 몰래 돕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꼬리가 밟혔습니다.
루벤스의 배우자 에우니시도 체포됩니다. 그러나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가까스로 풀려났고, 수소문한 끝에 남편의 사망 정황을 확인합니다. 그때부터 평생을 독재 정권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저항 운동에 헌신합니다. 부양자(가장)가 되어 다섯 명의 자녀를 기르면서요. 실종으로부터 25년이 지난 1996년, 마침내 정부는 루벤스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인정합니다.
부양자의 윤리
민주화 운동을 돕기로 한 루벤스의 선택은 윤리적입니다. 공공선을 위해 목숨을 걸고 독재와 맞서는 건 대단히 용감하고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부양자의 윤리와 충돌합니다. 부양자는 가족의 생계와 안전을 책임져야 합니다. 실종 이전에 루벤스가 잘 해냈던 것처럼 말이죠. 그러려면 공공선을 추구하는 선택을 일부 또는 전부 포기해야 합니다. 가족이 위험해지니까요.
루벤스는 실존 인물입니다. 그는 분명 고뇌했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공포도 느꼈겠지만, 발각됐을 때 가족의 안녕이 위험합니다. 그렇다고 모른 척 할 수도 없습니다. 양심에 찔리는 일이기도 하고, 길게 봤을 때 미래를 살아갈 자녀들을 위해서도 해야 하는 일입니다. 영화는 군인들이 고등학생인 첫째 딸을 이유 없이 검문하고 모욕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런 세상을 물려줄 순 없습니다.
루벤스의 실종과 사망으로 가족은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에우니시와 둘째 딸도 감금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겪게 됩니다. 돈을 벌던 아버지가 사라졌으니까요. 결과적으로 부양자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화 속 가족들은 루벤스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저열한 국가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아버지를 위해 싸우고, 서로 돕고, 슬퍼할 뿐입니다.
좋은 삶에 관한 인식 차이
저에겐 루벤스와 같은 용기는 없습니다. 그 시대에 살았더라도 목숨 걸고 민주화 운동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공공선을 추구하며 사는 삶이 좋습니다. ‘어떻게 하면 재능과 역량을 가장 돈벌이에 유리하게 활용할까?’는 저의 핵심 관심사가 아닙니다. 하고 싶은 일, 옳다고 믿는 일을 하는 데 필요하다면, 물질적 욕망을 (많이는 못 하지만;) 조금 절제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회사 다닐 때보다 소득이 줄었지만, 지금 더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게 부양할 사람이 생기면 이렇게 사는 게 맘 편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보람 있는 삶’입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에서 인기 있는 ‘좋은 삶’은 ‘경제적 자유’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자녀 등 피부양 가족은 확률적으로 ‘경제적 자유’를 좋은 삶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제 맘대로 ‘가족 여러분, 좋은 삶이란 보람 있는 삶이니까, 물질적 풍요보다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게요!’라고 해도 될까요? 꽤 고민될 것 같고,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설령 옳더라도, 가족이 위험한 일, 손해 볼 일은 안 했으면 하는 마음이 보편적 정서가 됐습니다. 그래서 <계엄령의 기억>의 70년대 브라질의 파이바 가족 이야기가 신선했습니다. 경제적 자유를 숭배하는 것이 좋은 삶의 기준을 획일화하고, 수많은 부양자를 갈등하게 만들고, 그들의 공공선 추구를 무수히 가로막지는 않았을까, 그 결과 뭔가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 넷플릭스에는 5월 17일 공개된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왠지 개봉하거나 넷플릭스에 공개될 것 같은데요. 정말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국제 장편 영화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계엄령의 기억>, 원제는 <I’m still here>입니다. 꼭, 보세요!
나초 한 봉지 먹으며 누워서 영화 한 편 보고 싶은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