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이 와장창
계단뿌셔클럽 (60)

요새 하늘이 무심합니다. 왜냐고요? 올봄에는 유독 주말에 비가 내립니다. 주중에는 화창하다가 하필 주말에요. 계단뿌셔클럽의 정복활동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될 지경입니다. 그렇지만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고난은 때로 감동의 복선입니다.
강수확률 60%

하필 정복활동이 많이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혜화, 선릉, 문래에 70여 명이 모일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요일부터 일기예보에 비구름이 끼기 시작합니다. 목요일엔 강수확률 60%에 예상 강수량이 시간당 1mm를 넘습니다. 1mm를 초과하는 비가 예보되면 활동을 취소하는데요. 판단 시점은 전날 오후 6시입니다. 근데, 전날 오후가 되자 기적적으로 강수량이 0.5까지 떨어집니다.
당일 아침, 집을 나서는데 취소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두컴컴한 하늘에서 추적추적, 봄보다 가을에 어울리는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미스트 같은 부슬비는 우산 들고 활동을 합니다. 그렇지만 그 이상이면 힘들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해서 활동을 취소하는데요. 전자보다 후자에 조금 더 가까운 상황 같았습니다. 가는 내내 걱정되고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활동 시작 시각 10시가 되니 혜화에는 비가 그쳤습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역시 하늘은 우리를 버리지 않는구나!’ 출석 체크를 해보니 생각보다 못 오신 분도 적었습니다. 이런 날씨라면 절반 이상 못 오시겠지 했는데 60명이 참석했습니다. 크루들이 빠짐없이 다 나왔습니다. 우리 정성이 갸륵해 비를 그쳐주셨나보다 기뻐했는데요. 좀 지나자 주룩주룩 비가 다시 내립니다.
감동의 쓰나미

끝내고 돌아온 크루들의 바지 밑단이 다 젖어있었습니다. 녹초가 된 표정들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잘못 판단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날 활동을 취소하면 이번 시즌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욕심이 났습니다. 그래서 취소 않고 어떻게든 해보려던 건데, 다들 너무 고생한 걸 보니 후회가 됐습니다. 잘못 판단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후기들을 들려줬습니다. 크루들은 “계뿌클하면서 오늘이 가장 힘들었는데, 해내서 뿌듯하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게스트분들도 힘들다는 말씀들이 있었지만, 그 외에는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진 않았습니다. “오늘 처음 왔는데 다음에 오면 무조건 오늘보다 편하고 쉬울 것 같다. 비 안 오는 날 와보고 싶다“는 후기도 있었습니다.
다들 활동에 좀 정떨어졌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요. 크루 커뮤니티 내에 스스로를 문제해결의 주체로 생각하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비 오는 날 취소하면 편합니다. 근데, 문제해결은 미뤄집니다.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어차피 내 일이고, 어서 해내고 싶은 일이라면 고생스럽더라도 하는 게 낫다고들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마음으로 게스트를 만난 크루들은 비를 뚫고 와준 그들이 정말 고마웠을 것입니다. 진심어린 환대가 전해졌으므로 게스트들까지 ‘(고생을 하고도) 또 와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크루 단톡방에 올라온 동료들 사진과 고생담을 읽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콧방울이 시큰해졌습니다.
와장창…!

삼중우중대첩은 이렇게 미담으로 계뿌클 역사에 등재될 예정이었습니다. 하늘이 무심해 난관을 만났으나, 우정으로 또 난관을 극복한 낭만적인 이야기로 말이죠. 그런데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감동에 빠져있던 저로서는 예상치 못한 성찰적 피드백을 듣게 됩니다.
‘주말에 잘 해내서 다행이긴 한데, 휠체어를 사용하는 게스트가 아무도 못 왔다. 게스트가 많이 참석한 것도 크루들이 초대한 친구, 지인이 많은 날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시야가 좁아져 활동할 때 좀 위험했다. 우천 취소를 고려해 애초에 좀 더 많은 회차의 정복활동을 계획하면 좋겠다’
아주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들었을 때 밉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 마음에 쏙 드는 감동적인 낭만 실화가 왠지 ‘와장창’ 깨지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미담에 결함이 없어야 고생한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 가져도 되니까, 그런 마음이 더 들었던 것 같습니다.
며칠 지나고 나니 정신이 차려집니다. 그리고 ‘낭만화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겠다는 회고를 했습니다. 감동은 감동대로 만끽하되, 감동의 이면에는 한계와 문제점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에도 미담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유는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지만요!
오늘 분량이 조금 길었으므로, 끝인사는 짧게 줄입니다.
대통령 투표 잘 하고 만나요!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