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감옥에 갇힌 사람을 풀어낼 방법
*이번 글에는 자살에 관한 언급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읽기를 원하지 않는 분, 마음 건강에 영향을 받으실 수 있는 분은 이번 글을 읽지 마시고, 다음 글을 기다려주세요.
원래 오늘 고성능 민주주의 2편을 보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주제를 바꿨습니다. 지난주 장제원 성폭력 사건의 수사가 종결됐고,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과 관련한 대법원판결이 나왔습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피의자가 사망해 피해자들이 ‘영원한 의심의 감옥’에 갇혔다는 것입니다. 이 감옥에서 풀어낼 방법이 없는지 따져봤습니다.
두 사건의 차이점
두 사건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지난 3월 장제원 전 국회의원은 성폭력 피의자로 입건됐습니다. 피해자가 고소하면서 경찰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조사 중에 피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도 유사합니다. 2020년 피해자가 고소했고, 경찰조사가 시작됐고, 피의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두 사건 모두 피의자가 사망해 수사가 종결됐습니다. 이유는 ‘공소권 없음’입니다.
차이점도 있습니다. 서울시장 사건은 간접적이나마 국가기관의 조사와 판단이 이뤄졌습니다. 피해자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사건 직후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직권조사를 실시해 피해 사실이 있었다고 판단해 발표했습니다. 이 조치에 대해 고인의 유족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인권위의 조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등이 재판에서 다뤄졌는데요. 지난주 대법원이 인권위의 조사와 판단에 문제가 없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습니다.
반면 장제원 사건은 이렇게 ‘수사종결’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권위 같은 국가기관이 직권조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관련된 소송이 진행되어 법원이 입장을 낼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관련 소송이 계속 이어지면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야만 대법원의 검토와 공식 판단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이게 최선일까요?
피해자 회복권 vs 가해자 방어권
왜 피의자가 사망하면 수사가 종결될까요? 이유는 두 가지, ‘효율성’과 ‘방어권’때문입니다.
형사사법절차를 만든 목적은 범죄자를 재판해서 처벌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처벌의 대상이 사라지면 절차 진행의 의미가 없습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수사 자원을 다른 범죄 수사에 투입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의자가 사망하면 수사를 중단합니다.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도 주요한 이유입니다. 공정한 조사, 재판을 위해서는 사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합니다. 피의자가 사망하면 100% 공정한 조사와 판단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피해자의 회복권이 침해되기는 하지만 ‘불가피하게’ 수사를 중단합니다.
한국만 이런 건 아닙니다. 찾아보니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피해자의 회복권 보장을 위해 피의자가 사망해도 경찰이 수사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우려되는 등, 경찰이 자체 판단했을 때 수사가 필요한 사건은 피의자가 사망했더라도 수사를 해서 결과를 발표합니다. 그러나 기소해서 재판하지는 못하는 건 영국도 우리와 같습니다.
해결의 초점은 ‘살아남을 이유 만들기’
저는 피의자의 자살을 예방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의자가 사망하면 진상규명, 처벌, 가해자의 사과와 반성 등 피해자의 회복에 필수적인 일이 모두 불가능해집니다. 억울한 피해를 본 사람들이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영원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피의자의 주변 사람들 역시도 큰 고통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악의 상황입니다.
피의자의 죽음을 예방을 위해서는 영국처럼 피의자가 사망해도 수사가 계속되도록 제도를 변경해야 합니다. 성폭력 같은 강력 범죄 사건에서 피의자가 죽음을 선택하는 건 가해 사실이 확정되어 평판을 잃는 걸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사망해 수사가 중단되면 ‘의혹’으로 남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망해도 어차피 수사가 계속된다면요? 살아서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이 낫습니다. 살아야 할 유인이 커지게 됩니다.
사망한 피의자의 방어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의 문제는 남습니다. 분명, 피의자가 없으면 경찰이 범죄 사실을 확정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애매한 사건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객관적인 증거, 물증이 있어도 경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습니다. 물증 확보가 가능해도 수사가 중단되어 확보가 무산되기도 합니다. 증거가 충분한 경우에 한해서라도 수사, 결과 발표가 이루어진다면 수많은 강력범죄 피해자, 그 주변 사람들의 삶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장제원 사건 피해자가 영원한 의심의 감옥에 갇히는 걸 보며 허무했고 착잡했습니다. 5년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에서 동료가 겪은 일이 반복됐기 때문입니다. 그때 피해자의 회복권을 보장하는 제도 변경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면, 이번엔 좀 달랐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대호 드림.
*정다연, 한민경(2022)이 발표한 논문 <피의자 사망을 이유로 한 ‘공소권 없음’ 수사종결 관행에 대한 고찰-피의자 사망 후 수사 지속의 필요성을 중심으로>을 주요하게 참고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