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서 유일하게 다시 가고 싶은 곳

마침 상하이에 도착해 보니 세계 AI 대회(WAIC)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WAIC는 중국 정부가 가장 힘주는 AI 박람회입니다. 미·중 간 AI, 로봇 기술이 대격돌하는 현장을 꼭 보고 싶었는데요. 애석하게도 입장권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더 좋은 곳에 다녀왔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입니다.

나라면 독립운동할 수 있었을까?

임시정부 청사 모형 (출처: 정책브리핑)

임시정부 청사는 의외(?)로 아주 호화로운 동네에 있었습니다. 신천지라는 고급 상업 시설이 밀집한 부자 동네입니다. 요즘 잘 나가는 글로벌 브랜드인 온(On), 살로몬 등의 으리으리한 매장과 음료 한 잔에 만 원이 넘을 것 같은 고급 카페들 사이에 기념관이 있습니다. 이렇게 호화롭게 개발되는 와중에 임정 청사가 쫓겨나지 않고 보존되어 있는 것이 조금 놀라웠습니다.

청사는 나무로 된 3층짜리 작은 건물입니다. 한 층의 면적이 50평쯤 되는 것 같습니다. 1층에는 회의실이, 2층에는 사무실이 있었고, 다락 같은 3층은 침대를 두세 개 놓을 수 있는 숙소입니다. 고작 20~30명 정도가 쓸 수 있을 것 같은 공간입니다. 만질 수는 없는 이 공간을 둘러보면 상상하게 됩니다. 100년 전 임시정부의 독립운동가들은 이곳에서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질문을 좀 더 솔직하게 바꿔보겠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요? 강제로 한국의 주권을 빼앗고, 죄 없는 수십만 명의 한국인을 강제 징용해 사지로 내몬 일본에 저항하는 건 정의로운 일입니다. 동시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길이기도 합니다. 결과를 아는 지금은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그때를 살았다면 독립운동할 수 있었을까요?

네 개의 길

임시정부 청사가 자리 잡은 신천지 거리

어떻게 가능했을까? 질문을 곱씹다 보니,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결정을 해석해 볼 수 있는 틀이 떠올랐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인생의 행로를 네 가지로 단순화해 보는 것입니다. 정의와 불의, 생존과 죽음을 기준으로 2×2 행렬을 만들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① → ② → ③ → ④ 순으로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정의롭게 살아갈 수 있으면 제일 좋지만, 저는 그게 어렵다면 대의를 버리더라도 살아남는 방법을 찾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어렵다면 불의를 무릅쓰고 죽는 것보다는 정의롭게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겠죠. 아마 아주 소수의 비범한 사람들은 ① → ③ → ② → ④ 순으로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임시정부 청사에는 생명보다 정의를 소중하게 여겼던 윤봉길, 이봉창의 이야기가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틀을 만들고 보니, 당시 임시정부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독립운동을 ① 또는 ③으로 여겼을 것 같습니다. 현재 상황이 엄혹하지만 언젠가 광복의 날이 올 테니, 독립운동을 잘하면 정의롭게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죽는 길임을 알면서도 옳기 때문에 선택한 사람들도 함께했을 것 같고요. 조심스러운 추론이지만, ①로 생각한 사람이 ③으로 생각한 사람보다 더 많았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엔 평범한 사람이 더 많으니까요.

정의롭게 생존하는 길

궁금했지만 비쌀 것 같아 못 마신 음료

1930년대 영국의 수상이었던 네빌 체임벌린은 독일의 나치 정권과 잘 협력하면 영국에는 피해가 없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물론 나치가 무고한 유대인을 가두고 죽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나치와 싸워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치와 싸워서 ③ 정의롭게 죽는 길, 협력해서 ② 불의를 무릅쓰나 생존하는 길 중에 영국의 선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후임자 처칠의 상황 판단은 달랐습니다. 협력해 봤자 더 많은 사람이 죽게 될 거라고 봤고,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처칠의 눈에 영국은 ① 정의롭게 생존하는 길과 ④ 불의를 무릅쓰고 죽는 길 중에 선택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둘 중에는 ①이 명백히 나은 선택입니다. 영국의 승리가 쓰인 역사는 체임벌린이 아닌 처칠의 판단이 옳았다는 걸 증명합니다.

같은 상황에서 김구와 윤치호의 생각이, 처칠과 체임벌린의 생각이 다릅니다. 어렸을 때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결국 일제의 편에 섰던 윤치호도, 체임벌린도 나름의 선의를 가지고 합리적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윤치호와 체임벌린은 아무리 봐도 자기 눈에는 ‘③ 죽는 길’인데, ‘② 사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공동체에도 이롭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반면 독립운동가들의 눈에는 ③ 정의롭게 죽는 길이 아니라 ① 정의롭게 생존하는 길이 보였습니다. ①의 길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가슴속에 낙관의 샘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조리한 현실이 영원할 리 없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곳 말입니다. 이토록 낙관할 수 있어야 체임벌린이 아니라 처칠처럼, 윤치호가 아니라 김구처럼 정면 돌파할 수 있을 테니까요.


‘독립운동 너무 무서운데,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가져보았을 의문에 나름의 답을 구해 보게 됩니다. 막연히 죽음을 각오하는 남다른 결기라고 생각했는데, 낙관이었을 것 같습니다.

상하이에 가시면 임시정부 청사 꼭 가보세요!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