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내 얘기잖아?
유령 회원처럼 활동하는 단체에서 책 모임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이라는 책이었는데요. 4대 보험 밖에 있는 불안정한 노동에 관해 연구한 책입니다.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노동과 관련한 제도에 오래전부터 관심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책도 사서 성실히 읽고 모임에 참석했는데요. 그 자리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입장의 변화
모임의 참석자는 모두 20대 후반 또는 30대 초반이었습니다. 직장인과 대학원생이 섞여있는, 평범한 책 모임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했는데요. 책에서 인상 깊었던 점을 이야기하다 보니, 다들 각자 자기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물론, ‘좋은 점’보다는 ‘문제점’에 대해서 말이죠.
사람들이 말하는 ‘우리 조직의 문제점’은 다양했습니다. 어떤 분은 회사에 생리 휴가 제도가 있는데 실제로 사용하려고 하면 못 쓰게 한다고 했습니다. 한 분은 회사에서 업무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이 명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것이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분은 조직이 가려는 방향에 별로 동의가 되지 않아서 이야기를 해봤지만 전혀 반영이 되지 않아 포기했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들을 듣는데 기분이 묘했습니다. 사실 독서 모임까지 가지 않더라도 저런 이야기들 직장인 단골 대화 소재잖아요? 저 역시도 수없이 나누어본 이야기고, 같이 공감하고 맞장구치고 친구의 회사나 상사를 같이 욕해준 경험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리액션이 안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비판하는 그 ‘회사’, 저는 ‘회사’의 자리에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좋은 회사’를 만들 수 있을 거란 착각
발언 차례가 왔을 때, 제가 느낀 생생한 머쓱함을 고백했습니다. 근로계약서를 ‘갑’으로 써야 하는 입장이 되니, 이야기가 새롭게 들린다고요. ‘직원’의 입장에서 그저 공감하고 같이 맞장구를 쳐왔는데, 솔직히 ‘그 회사에도 어떤 사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고 말했습니다. 다들 머쓱하게 웃으면서 ‘그럴 수도 있겠네’ 하고 다정하게 공감해주었습니다(...)
막연히 제가 대표자로 일하는 회사는 당연히 ‘노동 친화적인 좋은 직장’이 될 거라고 생각해온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오래전부터 노동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뉴스에 나오는 노동 현안에 대해 보통은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더 보장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가 대표 중 한 명으로 일하는 조직인데, 아무래도 ‘좋은 일터’일 확률이 높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요.
그날 처음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모임에서 ‘회사의 문제’라고 말한 것들을 뒤집어보면 ‘좋은 일터’의 조건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사람들이 좋은 일터의 조건으로 이야기한 것들 중에서 제가 ‘우리 조직에 필요하겠지?’ 하고 고민해본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생각조차 안 해본 것들이었어요. 생전 처음 듣는 무슨 유전 공학 지식도 아니고, 직원일 때 제가 늘 하던, 늘상 듣고 대화하던 소재들인데도 말입니다.
만화 ‘송곳’의 명대사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가 이런 뜻이구나 싶었습니다.
그거랑 이거랑 관계가 없다
저 날 이후로 ‘우리 팀은 어떤 조직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커졌습니다. 계단뿌셔클럽은 이제 6명입니다. 작지만, 더는 두 명만 괜찮으면 되는 조직이 아닙니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회사’가 되기 위해 대표자로서 알아야 할 것에 대해서, (의외로) 제가 별로 관심이 없고, 스스로 잘 알기도 어렵다는 사실은 꽤 으스스하고 오싹한 일입니다.
고민이 커지니, 기회가 날 때마다 여쭤보게 되는데요. 4~50명 규모 조직의 대표자인 김 선생님은 “가장 연차가 낮은 직원들의 의견을 주기적으로 확인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오직 확실한 건 회사에 자신이 알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조직 문화에 관한 것이든, 사업에 관한 것이든 주기적으로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의 의견을 확인하신다고 합니다.
물었을 때 별다른 이야기를 못 들을 때도 많고, 자신에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장치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 정도면 두루 잘 헤아리는 좋은 사람’이란 생각을 폐기하고, ‘확인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므로, 주기적으로 확인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지키면 문제를 좀 예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남는 찜찜함이 있습니다. 법은 당연히 지켜야 합니다. 근데, 그것을 넘어 ‘노동 친화적인 회사’, ‘구성원에게 사랑받는 좋은 회사’를 만드는 것이 제게 얼만큼 중요한 일일까요? 지상 과제로 천명한 ‘이동의 문제’를 푸는 것도 어려운데, 제가 필요 이상으로 ‘좋은 회사 되기’를 고민하고 ‘좋은 회사 만드는 멋진 나’를 바라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어 찜찜한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과 미련, 그런 거랑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요. 최근 재미있게 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에 대한 감상평과 함께 이 주제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어쨌든 가을이 와서 신이 나는
여러분의 친구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