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쁨의 대가
계단뿌셔클럽 (59)

계단뿌셔클럽의 문제해결형 커뮤니티 ‘크러셔 클럽’은 올가을 네 번째 시즌을 맞이했습니다. 전신이었던 ‘23 봄시즌’부터 세면 여섯 번째 시즌, 3년 차입니다. 그동안 활동한 크루(4개월 활동)만 400명이고, 이번 시즌은 119명입니다. 무려 3년 내내 함께한 동료도 있습니다. 갑자기 왜 자랑이냐고요? 오래 함께한 동료들의 존재가 요즘 저의 고민이기 때문입니다.
최수종이 된 기분

배우 최수종은 배우자인 하희라를 위해 평생 다양한 이벤트를 해왔다고 합니다.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최수종, 어느 날은 스카이다이빙인지 번지점프를 동원한 이벤트를 했다고 하는데요. 그걸 본 하희라가 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 정도 노력을 하진 않지만, 크러셔 클럽을 준비하다 보면 최수종의 마음을 떠올려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매 시즌을 시작하는 행사인 ‘스타팅 데이’ 때 계뿌클 소개 세션을 항상 하는데요. 20~30분가량 진행되는 이 시간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어야 할 ‘첫 활동 크루’가 아닌, ‘오래 활동해온 크루’들의 표정을 더 살핍니다. 이 얘기를 최소 2번, 3번은 들었을 그들이 지루해하지 않을지, 심기가 무척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형형한 눈빛으로 집중하는 동료들도 있지만, 이 시간을 지루해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 입장이 너무 공감됩니다. 계뿌클 소개 내용을 매번 업데이트하지만, 큰 틀에서는 같은 내용입니다. 이미 여러 번 들어보고 자기 입으로도 설명해본 내용을 계속 재미있게 들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목표, 새로운 시스템, 새로운 이야기거리를 원하는 건 당연합니다.
고인물이 이끄는 성장의 성과와 한계

오래 함께 활동한 소위 ‘고인물’ 동료들의 기대는 발전의 중요한 동력이었습니다. 새로운 시즌을 기획할 때 ‘고인물’의 입장에서 이번 시즌이 재미있을지를 생각해보면,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많이 하게 되거든요. 크루들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 새로운 커뮤니티 활동, 리더십을 발휘해볼 기회 등 수많은 요소가 ‘고인물’과 한 시즌 더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서 탄생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노력은 때로 ‘신규 크루’의 이해관계와 충돌합니다. 프로그램이 복잡해져서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크러셔 클럽은 실제로 꽤 긴 가이드북과 매뉴얼을 갖고 있습니다. 오래 활동한 크루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에서 조금씩 더해져 이해가 쉽지만, 새로 합류한 동료들은 ‘너무 복잡해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피드백을 흔히 합니다.
다행인 점은 크러셔 클럽에는 환대의 문화가 있어, 신규 크루의 적응을 돕는 역할을 오래 함께해온 동료들이 적극적으로 도맡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정답은 아닙니다. ‘설명해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프로그램을 한없이 고도화하고 복잡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여러 시즌을 함께한 동료들이 기대하는 ‘새로움’은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고, 제약 조건은 많아지고, 모두를 만족시키는 변화의 가능성은 줄어듭니다. 우울한… 이야기입니다.
이별

어쩌다 지인인 강 선생님께 이 고민을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교회에서 오랫동안 주일학교 교사로 자원봉사해온 경험을 들어 조언을 해주셨어요. 5년 넘게 하다 보니, 새로운 것을 기대하면서 하는 시기는 지났고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가 됐다고 합니다. 그만둔다면 그 이유는 ‘반복돼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강 선생님의 기여를 당연하게 생각해서’일 거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노력을 귀하게 여기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요.
생각하지 못했던 점입니다. 매번 새로운 이벤트를 기획하느라 머리가 빠질 것 같은 최수종의 자아가 한 발 물러나며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습니다. 고맙다는 마음은 가득합니다. 강 선생님 말대로 감사의 마음을 잘 표현하기만 하면, 좋아하는 동료들과 이 모험을 좀 더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습니다.
추억을 공유하는 동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이 일을 하면서 제가 얻는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러나 제 일에는 이것보다 중요한 ‘문제해결’이라는 목표가 있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고인물’을 염두에 둔 새로운 기획,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 모두 최선을 다할 작정입니다. 그래도 막을 수 없는 이별이 늘어납니다. 문제해결을 위해 선택해야만 하는 이별도 있습니다. 이 이별들이 기쁨의 대가인 것을 알지만, 매번 참 난데없고 과중한 청구서 같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있을 때 잘합시다...
있을 때(?), 잘해 드릴게요...
마음이 쓸쓸한,,, 가을 남자
이대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