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일해야 열심히 일하는 건가요?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산성을 유지하며 최대한 많은 시간 일하기 위해 잠을 줄이고 ADHD 약을 먹고 있다는 겁니다. 이미 1년 반쯤 됐고, 자기 회사 사람들 다수가 약을 먹으며 버틴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조직의 기대치를 겨우 맞출 수 있다고요. 거부감이 드는 이야기였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해졌습니다.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과거의 열심 기준 ‘받은 만큼 한다’

제한속도 시속 50km 정도의 시절

직장인 이대호는 열심히 했습니다. 당시 저의 ‘열심히’의 기준은 ‘받은 만큼 한다’였습니다. 조직에서 기대하는 바에 부응하고자 애썼습니다. 그렇지만 저에 대한 기대가 보통 그리 높지는 않았습니다. 기대치를 맞추는 것이 아주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여느 주 5일 사무직 직장인처럼 주에 보통 40~50시간 정도 일을 했고, 가끔 야근을 했으며, 주말에는 거의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대체로 힘이 남았습니다. 남은 힘으로 이런저런 사이드 프로젝트를 했습니다. 프로젝트 팀을 꾸려 웹 서비스를 만들기도 해보고, 국회의원 후보 선거운동 캠페인을 기획해서 운영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이드 프로젝트 거리가 딱히 없을 때는 그냥 잘 놀았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신나게 보고, 한 주에 반나절쯤은 책을 읽으면서 보냈던 것 같네요.

기대치 이상으로 열심히 해볼 법도 한데요. 더 열심히 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조직의 미션에 가슴이 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미션이 후져서가 아니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가슴이 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내 일도 아닌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내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사이드 프로젝트’에 진짜 애정을 쏟은 거죠.

현재의 열심 기준 ‘최선을 다한다’

정복활동하기 좋은 정원도시 서울

이제는 ‘내 일’입니다. 그래서 열심의 기준도 ‘받은 만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저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주어진 모든 시간과 집중력을 손실 없이 일에 쏟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루 24시간은 일하는 시간과 일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간(수면, 식사 등), 여가 시간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일하는 시간에 딴짓을 최소화하고, 여가 시간의 총량을 줄여서 일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최선을 다한다’입니다.

그런데 최선을 다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제가 가장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은 당연히 아니지만, 꽤 많은 시간을 일에 쓰고는 있는데요. 평일에는 거의 일을 하며 보내고, 주말에도 보통 활동, 행사가 있습니다. 휴식, 여가 시간은 많으면 한 주에 한나절, 적으면 반나절 정도 주어집니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한 것은 아닙니다. 일로 전환할 수 있는 여가 시간, 짜투리 시간이 있긴 있으니까요.

‘하고 싶은 일’이 아닌 일을 하던 직장인 시절에는 ‘일하기 싫지만 참고 하자’는 생각을 별로 안 해본 것 같아요. 적당히 했으니까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지금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지만, 일하는 시간이 늘어서 ‘즐겁지 않지만 참고 하자’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럼 열심히 했다고 스스로 뿌듯해할 법도 한데, 못 다한 일이 떠오르고, ‘사실 더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만 듭니다. 피곤하더라도 ‘나 참 열심히 했군!’ 하는 생각이 들면 기분이라도 좋을 텐데, 씁쓸한 역설입니다.

분위기 망치는 리더가 목표 이룰 수 있을까?

분위기 망치는 애

그래도 최선을 다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상책이라고 믿었는데, 최근에 좀 다른 생각이 듭니다. 제가 조직의 분위기를 해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들고요. 그 원인에는 제가 가진 인내심을 초과하는 일하는 시간, 업무의 양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에 쫓기고, 휴식 시간이 적으니 말수가 줄고, 말수가 줄고 표정이 굳어 있으니 함께 일하는 입장에서 당연히 편하지가 않은 거죠.

물론 대표자가 꼭 좋은 기분을 유지해야만 모든 조직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표자가 구성원을 괴롭히고 못 살게 구는 조직들 중에도 목표를 달성하고 성장하는 조직이 세상에는 아주 많으니까요. 그렇지만 계단뿌셔클럽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제가 좀 즐거울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요.

첫째는 제 명함에 ‘커뮤니티 빌더’라고 써 있기 때문입니다. 커뮤니티 빌더가 즐거운 상태를 잘 유지하지 못하면 커뮤니티 빌딩이 잘 되기가 어렵습니다. 둘째는 비영리조직은 ‘금전 인센티브’를 쓰기가 어렵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도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근데 제가 자꾸 분위기를 망치면, 우리 팀의 훌륭하고 출중한 동료들이 같이 일하기… 싫지 않을까요…?


‘받은 만큼 한다’, ‘최선을 다한다’,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열심’을 평가하며 살아왔는데요. 아무래도 새로운 기준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나 해야 열심히 일하는 건가요? 여러분의 기준을 제게 좀 알려주세요!

사실 다 체력 문제인가 싶기도 한
30대 중반 이대호 드림.